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겨울잠 좀 잘 수 없나

어느 새벽, 아직 사위는 캄캄한데 새벽잠을 깨우는 알람이 울렸다. 아내는 부스스 눈을 뜨며 힘없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람도 겨울잠 좀 잘 수 없나.

한편으론 우습기도 했지만 안쓰럽기도 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고된 일상에 지친 탓이었으리라. 여름철과 달리 밤이 긴 겨울철, 날이 채 새지 않았는데도 몸을 일으켜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비애이다.

밤이 많이 짧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새벽 일찍 일어나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힘들다. 휴대전화의 알람 소리가 울리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따뜻하게 몸을 감싸주던 이불을 용감하게 박차고 일어나 기지개를 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럴 때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생각 아닐까. 인간도 겨울잠 좀 잘 수 없나.

인간이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긴긴 겨울 석 달 정도만이라도 아무 생각 안 하고 쉴 수 있다면. 인간처럼 스스로를 고달프게 하며 살아가는 생물에게 정말로 겨울잠이라는 휴식이 필요한 것 아닐까.

그런데 과학자들의 최근 연구를 보면 인간도 겨울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동면(겨울잠) 유전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동면 능력을 다시 깨우기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먼 조상들도 겨울이 오면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먹이가 부족했을 것이다. 수렵과 채취로 식량을 마련하던 시대에 만물이 얼어붙어 버리는 겨울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니 자연히 겨울잠을 잠으로써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었으리라.

요즘 같은 현대에 누가 겨울잠을 잘 수 있겠는가.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니 겨울잠은커녕 한겨울 밤에도 잠을 줄여야 하는 지경인데. 농촌에서는 가을걷이가 끝난 뒤 다음해 봄이 올 때까지 휴식에 들어갈 수도 있다. 요즘엔 농촌도 겨울에 일거리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농한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 학년을 잘 마무리한 학생들에게도 겨울은 새롭게 다가올 한 학년을 준비하는 휴식기이다. 일종의 겨울잠 기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곰이나 개구리처럼 잠을 자지 않지만.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는 근로자들한테 겨울은 왜 그런지 1년 중 가장 바쁜 때가 아닐 수 없다. 초겨울 곰이나 다람쥐, 개구리가 일찌감치 겨울잠을 자러 들어갈 때부터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 분주했고, 한겨울인 1월에도 신년 계획이니 새해맞이니 하며 동분서주했었다. 올 2월엔 설날 연휴까지 길어 한층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난 석 달이 유난히 더 바빴던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 모두 용케 잘 견뎌냈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3월이 바로 모퉁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제 잠깐 여유로운 시간을 즐겨도 좋을 것 같다. 일상 속 잠깐의 짬이라도 내어 봄의 낮잠이라도 즐겨보자. 겨울잠 유전자는 아직 깨워내지 못했지만.

홍헌득 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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