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나이트 크롤러

#사건·사고 현장 생생한 영상

#TV 매체에 고가로 팔아넘겨

#고통·죽음마저 시청률로 계산

#미디어의 추악한 속살 들춰내

'나이트 크롤러'라는 낯선 프리랜서. 그들은 매일 밤, 도시가 잠든 사이에 빠른 차와 고가의 비디오카메라 장비로 무장을 하고 경찰 무전을 들으며 이야깃거리를 찾아 도시 일대를 누비고 다닌다. 그들은 차량충돌, 화재, 살인, 각종 폭력 등의 사건 사고를 쫓아 현장의 영상을 생생하게 촬영한 테이프를 TV 방송국에 판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여타 범죄 스릴러 영화와 다르다. 사건이 발생하고,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두뇌 게임과 액션이 이야기와 볼거리의 중심인 범죄 스릴러 영화의 장르적 관행을 벗어난다. 이 영화는 매우 현실 반영적이고 자기투영적이라서 더 섬뜩하고 더 암울하며 동시에 더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를 관찰하는 것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에서 비판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미디어 선정주의 그 자체가 되는 역설에 빠지기 때문이다.

첫 연출 신고식을 한 댄 길로이 감독은 '본 레거시'의 각본가로 알려졌으며, '본 시리즈'로 유명한 토니 길로이 감독의 동생이다.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영화제 각본상에 후보로 올랐다. 여기에 제이크 질렌할의 냉혈한 연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미남 배우 질렌할이 초라하고 변변치 못하지만 목표를 향해서 어떤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도시 사냥꾼으로 변신한다. 완벽하게 영화 속 인물이 됨으로 인해 그의 잘생긴 외모까지 추악하게 보이게 될 정도다. 질렌할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올랐으나 아카데미영화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자, 많은 팬과 미디어가 영화제 최대 이변 중 하나로 손꼽았다.

놀라운 것은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바로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일일 것이라는 자각이다. 영화는 고통스러운 재난, 충격적인 사고, 미디어의 장난, 자본 놀음 등 여러가지가 얽히고설킨 현대 자본주의의 추악한 얼굴을 보여준다. 액션과 볼거리를 기대하기보다는, 자본과 권력 카르텔을 공고히 하도록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미디어의 행태에 놀아나는 순진한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서 영화를 바라보길 바란다.

자잘한 절도나 저지르며 살아가던 루이스(제이크 질렌할)는 우연히 목격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특종이 될 만한 사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TV 매체에 고가에 팔아넘기는 일명 나이트 크롤러를 보게 된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빠르게 나타나 현장을 스케치하고 전화로 가격을 흥정하는 그들에게서 묘한 돈 냄새를 맡은 루이스는 즉시 캠코더와 경찰 무전기를 구입하고 사건현장에 뛰어든다. 유혈이 난무하는 끔찍한 사고 현장을 적나라하게 촬영해 첫 거래에 성공한 루이스는 남다른 감각으로 지역채널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매번 더욱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뉴스를 원하는 니나와 그 이상을 충족시켜주는 루이스는 최상의 시청률을 만들어내며 승승장구한다. 자신의 촬영에 도취된 루이스는 결국 완벽한 특종을 위해 최고로 위험한 사건 현장에 뛰어든다.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우리 모두를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알 권리와 원인 추적이라는 미명하에 미디어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사건을 이슈화한다. 일명 재난 마케팅이라고도 불리는 미디어 선정주의의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알 수 없다.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이 시청률로 계산되는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디어가 선정주의로 도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 되어버렸다. 그 모든 비인간성의 밑바탕에는 돈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의 톤은 어둡고 비열하지만, 마지막까지 냉혹하고, 대담하며, 잔인한 주인공의 행위의 강도는 더욱 세지기만 해서 긴장감이 영화 막바지로 갈수록 더 높아진다. 주변부로 밀려난 주인공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감정이 무뎌지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가 되어가는 것은, 잔인하지만 이유가 있다. 영화는 끝까지 현대 자본주의 세계란 추악한 내면과 그를 둘러싼 우아한 겉포장이 본성임을 절망적으로 보여준다.

정민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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