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문학의 경우 어떻게 번역하는가에 따라 그 작품에 대한 읽는 이의 이해와 평가는 달라진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읽기가 영 어색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마치 처음부터 우리의 글로 쓰인 듯 풍성한 감성과 상상력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도 있다. 그래서 번역된 외국문학의 경우 작가가 누구인가를 보기 이전에 번역한 이가 누구인가를 먼저 찾아보고, 그 작품에 대한 신뢰성을 미리 점치는 경우가 간혹 생기기도 한다. 내가 무한신뢰를 보내는 번역가 가운데 최고의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김화영이라는 이름에 손을 들 것이다. 그의 이름으로 번역된 작품 가운데 나에게 의미롭지 않았던 것이 없었으며, 그의 소개로 수많은 작가들을 알게 된 것과 더불어 프랑스 문학에 대한 이해와 새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장 그르니에, 미셀 투르니에 같은 작가들을 알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들의 경우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내게 많은 시적 이미지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팔월의 일요일들' 같은 책들은 제목만 소리 내 읽어도 참 문학적이다.
아무리 그가 번역한 작품이라도 구입한 후 서문만 읽은 채 책장 깊숙이 꽂아두고 펼치지 않았던 책이 몇 권 있다. 그 가운데 얼마 전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 예찬'을 발견하였다. 초판 발행 날짜가 2002년 1월로 찍혀 있는 이 책은 아마도 당시의 게으른 나의 생활방식에는 잘 맞지가 않았는가 본데, 다시 펼쳐본 책 속에는 지금의 내 머리를 서늘하게 하는 경구들이 한겨울의 서리처럼 빛나고 있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첫 문장에서부터 나는 먹먹해져 버렸다. 운동이나 업무를 위해서 아니라, 사색을 통한 이 세상과의 내밀한 소통을 위해 내가 진정으로 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차를 타고 가며 듣는 소리는 한낱 소음에 불과하지만 걸으며 듣는 소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새롭다. 나와 세상에 대한 경고의 소리일 수도, 위로의 소리일 수도, 깊은 꿈 같은 몽상의 소리일 수도 있는 무수한 소리들이 내가 걷는 그 길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들을 받아들이며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을 자각하고, 살아있다는 의미를 깨닫는다. 한참을 걷고 난 후의 휴식은, 스스로 재충전된 몸과 마음을 발견할 수 있기에 더욱 달콤하다.
김화영을 통해 다시 발견한 '걷기'는 새로운 메시지를 내게 던져주며 또 다른 생활의 시작을 권유하고 있다. '보행은 삶의 평범한 순간들의 가치를 바꿔 놓는다. 보행은 그 순간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한다.' 그러니 당신도 오늘 같이 한번 걸어보시지 않을래요?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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