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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병자호란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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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청(淸)에 대해 신(臣)의 예를 행하고…조선왕의 장자와 차자 그리고 대신의 아들을 볼모로 청에 보내고…내외 제신과 혼인을 맺어 화호(和好)를 굳게 하고…옛 성이나 새로운 성을 보수하거나 쌓지 말며…해마다 공물(貢物)을 보내라.'

조선 인조 임금은 1636년 12월 오랑캐 여진족의 청 태종이 대군으로 병자호란을 일으키자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이듬해 1월 이런 굴욕적인 11개조 요구를 받아들이며 항복했다. '세 번 절하고 머리를 아홉 번 땅에 찧는다'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도 감수했다.

항복터는 당시 경기도 광주 여주 일대와 서울을 잇는 한강의 삼전도(三田渡)란 나루터. 굴욕의 모습은 청의 강요로 세운 '대청황제공덕비'로 남았다. 인조의 간청으로 마지 못해 비문을 쓴 이가 "글 배운 것이 천추의 한"이라 했던 그 비는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에 자리해 '힘 약한' 나라의 운명을 고스란히 오늘에 전하고 있다.

그제 (사)정암학회 등이 병자호란 용인 수지전투 378주년을 맞아 학술행사를 열었다. 병자호란 때 대승을 거두거나 순국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청 태조 누루하치 사위로 태종의 매부 양고리(楊古利) 장군 등을 사살, 용인 수지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충양공 김준룡과 69세 노병 정무공 최진립 장군, 충민공 김홍익 현감을 비롯, 2천600여 군사가 전사한 험천(險川) 전투 등을 조명했다.

전라병사 김준룡은 1637년 1월 용인 광교산에서 양고리 장군과의 전투에서 대첩을 거두었다. 뒷날 번암 채제공은 1794년 전승터에 암각석비를 세워 기렸다. 청 황제 측근 양고리를 죽인 탓인지라 청 눈치로 155년 뒤인 1792년에야 충양공 시호를 받았고 승리한 광교산 골은 오랑캐가 항복한 골짜기란 뜻으로 지금도 '호항골'(胡降谷)로 불린다.

공주 영장 최진립과 연산 현감 김홍익은 1636년 12월 용인 험천전투에서 순국했고 2천600여 병사도 장렬히 전사했다. 특히 최진립의 집안 노비인 기별과 옥동도 함께 전사했다. 전후 숙종, 영조, 정조는 직접 이곳을 찾아 영령을 위로했고 조정은 1637년부터 고종 때까지 제사를 지냈다. 정무공 후손은 두 노비의 비를 세우고 지금도 정무공 제삿날에 두 종을 함께 제향하고 있다.

굴욕의 조선처럼 미'일'중'러 4강국에 끼여 힘든 오늘을 생각하면 병자호란의 교훈은 남다르다. 나라가 힘없으면 모두가 고달프고 순국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이야기도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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