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24시 현장기록 119] 이젠 정말 떠나야겠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해 2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처럼 복지 사각지대 속에서 고통받는 우리의 이웃을 한 번 되돌아보고 따뜻한 관심을 가져 보고자, 올해 발생한 한 사람의 죽음을 유서와 주변인, 우리 대원들의 현장 조사 내용 등을 토대로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사실과 조금 다를 수도 있음을 먼저 밝힙니다.)

관리비가 석 달이나 밀렸다. 기초수급자로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돈이 20만원인데 병원비, 식비 등으로 지출하기도 모자란다. 일을 해야 하는데 당뇨합병증으로 팔다리가 아파 움직이기도 힘들다. 의사와 사람들은 식이요법이네 건강식품이네 말들을 하지만 그것 모두 돈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수면제를 아무리 먹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한 알, 두 알… 일곱 알까지 수면제를 먹어도 머리만 몽롱할 뿐 잠은 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기가 싫다. 머리와 손발이 아파 나가기도 힘드니 사람들을 만나기가 더 두렵다.

요즘은 헤어진 아내와 딸 그리고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손녀가 정말 보고 싶다. 나 몰래 시집간 딸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 젊은 시절 건달로 무책임하게 살아온 것이 후회스럽다. 힘든 세상…. 줄도 없고 돈도 없고 힘만 빠지는 세상…. 외롭고 고달프다. 누가 알아주는 이 없고 아픈 몸으로 살아가자니 더욱 서글퍼진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생활비 줄여 로또복권을 구입해 봤다. 복 없는 놈에게는 이마저도 덧없는 희망일 뿐이다. 내일도 밝은 태양이 뜨겠지만 태양을 바라보지 않고 푸념해 버릴 것이다.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해 보지만 내일도 희망이 없을 것 같다. 이젠 정말 떠나야겠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가난을 아십니까?"

죽겠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보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그저 나를 불쌍하게만 여긴다. 이 세상에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 연속되는 지긋지긋한 고통을 이제는 끊어야겠다. 그럼 어떻게 고통 없이 죽을 것인가. 한 번에 성공을 해야 하는데….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무섭기도 하지만 내 몸이 바닥에 부딪혀 부서져 있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다 볼 건데…. 줄에 목을 맬까? 그런데 아파트라 줄을 맬 자리도 없고 혹시 줄이 끊어진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컴퓨터라도 있으면 물어볼 텐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 그래 맞다. 사람들이 번개탄을 피우고 많이 자살했지. 그래 술을 먹고…. 그리고 나에게는 수면제가 있었지…. 그래 이것이다. 내일 날이 밝으면 번개탄을 사고 연탄을 사야겠다.

역시 내가 죽는다 해도 날은 어김없이 밝는구나! 이번 달 생계비를 먼저 찾아 저승길에 노자라도 해야겠다. 그리고 얼마 안 되지만 아파트 임대보증금은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용돈을 드린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슈퍼마켓에 가자. 이상하게도 오늘은 머리와 다리가 덜 아픈 것 같다. 내 몸도 마지막인 것을 아는가! 사람들은 죽기 전에 마지막 유언을 하기 위해 깨어난다고 하더니만 내가 그 모양이다. 방 안을 깨끗이 청소하자. 내 죽음을 보러 손님들이 올 텐데 지저분해서야 되겠는가.

청소와 정리를 하니 마음도 개운하다. 그럼 어떻게 불을 피워야 할까? 번개탄을 연탄 위에 올릴까, 연탄을 번개탄 위에 올릴까? 연탄가스를 만들려면 번개탄 위에 연탄을 올려놓아야겠지. 마지막 잔을 들자. 에이! 따라줄 사람이 있어야 잔이 필요하지. 그냥 마시자. 한 병을 마셨는데도 취하지도 않네. 그래 수면제를 먹자. 수면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네. 다 먹어 버리는 것이 좋겠지. 먹고 나니 머리가 몽롱해지는구나. TV를 보자. TV 속 사람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래 니들은 잘 놀아라 나는 간다. 왠지 모르게 외로워지는구나. 이불이라도 꼭 안으면 좋으려나? 남은 술 한 병 마저 마셔 버리자. 맵싸한 냄새와 연기가 방안에 가득 찬다. 저 연기를 따라 나도 천국으로 가겠지. 아, 이 냄새! 어린 시절 부엌에서 어머니가 밥해줄 때 나는 냄새와 똑같네. 그때가 좋았지. "어머니! 보고 싶어요! 가난한 사람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불효자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 어머니 정말 그리고 너무도 사랑합니다!"

김준수 대구 달서소방서 지휘조사팀 소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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