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라의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세계 4대 해전을 가르친다고 한다. 4대 해전으로는 기원전 480년의 살라미스 해전을 비롯해 칼레 해전(1588년), 한산도 해전(1592년), 트라팔가르 해전(1805년)을 손꼽는 학자들이 많다. 동'서양의 첫 해전인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의 도시국가 그리스 함대가 동방의 대제국 페르시아의 우세한 해군을 물리친 것이다.
그리스 수군은 페르시아의 대전함을 좁은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해 격파했는데, 적함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파괴시키는 전술을 사용한 최초의 해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결과 그리스는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영국과 펠리페 2세의 스페인과의 신'구교 종교전쟁으로도 불리는 칼레 해전 또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다름없었다. 해적 출신의 드레이크가 지휘하는 영국의 전함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쳤는데, 대포의 화력으로 적함을 강타한 첫 해전으로 꼽힌다. 칼레 해전 후 스페인은 사양길로, 영국은 새로운 해양강국으로 부상하며 흥망이 엇갈렸다.
서양에서 칼레 해전이 일어난 지 4년 후 조선의 남해에서도 회심의 일전이 벌어졌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 함선을 한산도 앞 너른 바다로 유인해 학익진 전술로 포위한 가운데 화력으로 대파한 한산도 해전이다. 육지도 아닌 해상에서 학익진과 같은 유기적인 전술을 구사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한산도 대첩은 세계 해전사상 명승부로 임진왜란의 판세를 바꿔놓았다.
트라팔가르 해전은 나폴레옹의 연합군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군 간의 한판 승부였다. 유럽을 제패하려던 나폴레옹의 함대를 맞아 넬슨은 종전과 다른 횡렬진을 펼치면서 승기를 잡았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우선 4대 해전 모두 강대국의 전함을 상대로 싸워 이겼다는 것이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일대 회전에서 약소국의 장수는 침략국의 오만과 방심을 역이용했다. 비록 양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무기와 장비를 최대한 활용했고, 지세와 지형을 이용해 전황을 역전시키는 전술을 구사했다. 4대 해전에 꼽히지는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극적인 승전을 이루어낸 전투가 명량 해전이다.
1597년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의 해협인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 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12척의 전선으로 130여 척의 왜적선을 물리친 기적적인 싸움이다. 중과부적의 절박한 여건에서도 정신적'물리적 역량을 총동원해서 거둔 빛나는 승리였다. 왜군의 자만 심리를 이용해 울돌목으로 유인을 하고, 조류의 방향과 급물살을 활용했다. 우세한 함포 공격으로 백병전에 강한 적선의 근접을 막고, 견고한 판옥선으로 왜선에 충격을 가하는 당파전술도 구사했다. 명량 해전의 승리로 서해를 통해 북진하려던 일본군의 전략을 무산시키며 조선 수군은 다시 제해권을 확보했다.
충무공 탄신 470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는 다시 명량(울돌목)에 서 있다. 중국의 패권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 위협에 울돌목은 역시 중과부적이다. 그런데 외세의 침략을 막아야 할 정치 지도자와 군 지휘부는 부정과 비리의 늪에 빠져 있고, 그때처럼 국론은 분열되고 민심도 흩어졌다. 특히 충무공의 후예임을 자부하던 해군의 명예는 나락으로 떨어져 창군 70주년의 역사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전열을 가다듬어 국난 극복에 앞장서야 할 정치인들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여 정신이 혼미하고,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며 국권 수호의 방패가 되어야 할 군은 부패의 바다에 잠겨 있다. 회오리치는 물결로 울음을 토해내는 오늘의 울돌목에는 장수도 없고 전략도 없다. 집이 가난하면 좋은 아내가 생각나고(家貧思良妻), 나라가 어지러우면 충신이 생각난다(國亂思忠臣)고 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도 옛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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