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인구절벽 시대의 한국

세월이 약이라고 한다. 아무리 가슴 아프고 속에 맺혔던 일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자연히 잊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도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대사라면 세월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 인구 문제가 그렇고 연금 문제가 그렇다.

일본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렸다. 그만큼 일본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였다. 1989년 일본 소니가 최고 콘텐츠 기업으로 꼽히던 미국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했을 때만 해도 미국 경제까지 삼킬 기세였다. 하지만 그까지였다.

일본은 1990년대 초 인구절벽에 섰다. 일찍이 국가 발전을 이룬 선진국 중 소위 '인구절벽'에 선 첫 나라가 됐다. '인구절벽'이란 미국의 경제전망 전문가인 해리 덴트가 생애주기상 소비가 정점을 치는 47, 48세 연령대가 줄어드는 시기부터 경제가 급격히 둔화한다는 뜻에서 사용한 말이다. 일본의 소위 단카이 세대(전후 1947~1949년 사이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 소비가 정점에 달한 것이 1993년 전후였다. 일본이 1992년 15~64세 사이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56.9%로 정점을 찍은 시기와 같다. 이때부터 일본은 자산과 부동산 시장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길을 가게 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이 됐고, 잃어버린 20년이 됐다.

출구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1990년 일본의 국내 총생산(GDP) 대비 나랏빚 비율은 69%였다. 지난해 이 비율은 246%까지 치솟았다. 세계 1위다. 아베는 지금 해마다 국가 예산의 절반가량을 빚내 나라 살림을 꾸리고 있다.

일본의 총인구는 3년째 내리 감소 중이다. 2011년 국민연금 납부율은 48.6%에 불과한데 현역세대 2.5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하고 있다. 그만큼 연금 고갈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단카이 세대가 모두 65세 이상에 이른 올해부터 연금과 의료비 지출은 더욱 가팔라지게 된다.

이제 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리고 있다. 한국의 각종 지표는 일본보다 20여 년 후행하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경고음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선다. 2018년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로 들어서고 2026년 초고령사회로 들어선다. 모든 지표들이 일본보다 20~25년 늦게 진행되고 있다. 속도는 빠르다. 일본이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7%)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25년, 다시 초고령사회가 되는 데 11년이 걸렸다면 우리나라는 고령사회 진입에 18년, 초고령사회로 가는데 불과 8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1980년 25.9세였던 국민 평균 연령은 1995년 31.2세, 지난해엔 40.3세로 40대 시대를 열었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 출산율은 1.21명으로 OECD 34개국 중 가장 낮다. 국가부채 비율도 빠르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고채 잔액의 GDP 비중은 2000년 7.1%에서 지난해 29.4%로 14년 동안 4배 이상 늘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며 노인인구에 편입되는 2018년에서 2020년 사이 우리나라도 인구절벽 시대가 예고돼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강 건너 불이다. 과연 얼마까지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가가 핵심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은 여전히 정쟁에 휩싸여 있다.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대로 시행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2027년까지 국민 세금 148조원이 투입돼야 하는 안이다. 지금 추세라면 41년 뒤인 2056년 우리나라 인구는 4천만 명까지 줄어들게 된다. 연금 낼 사람은 사라지고 연금받을 사람만 넘쳐나는 상황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일본은 타산지석이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일본 선례를 뻔히 보면서도 그대로 따라가는 형국이다. 국민 눈에는 뻔히 보이는 일이 위정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미리 준비해 대비하지 않으면 세월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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