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공무원으로 40여 년을 근무하다 지난해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슬하에는 아들이 둘 있고 지금은 모두 결혼을 했습니다. 큰아들은 직장에 성실히 다니고 있어 크게 걱정이 없는데, 작은아들이 걱정입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 크게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두 아들 모두 부족함 없이 교육도 시켰는데 작은아들이 어느 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며 사업자금을 부탁합니다.
사실 저는 퇴직 이후 연금을 받고 있어 생활자금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의 결혼자금으로 목돈을 지출하는 바람에 지금은 현금이 없고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은 약간의 농지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재산의 전부입니다. 작은아들은 결혼할 당시에 제가 마련해 준 아파트를 담보로 사업자금을 마련했고, 모자라는 자금을 부탁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고민이 됩니다. 아내는 처음이니 빚을 내서라도 마련해 주자는 의견인데 저는 영 내키지 않습니다. 우선 수중에 현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금을 만든다고 해도, 큰아들과도 의논을 해야 할 것 같고 이런 일이 반복될까 하는 염려에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작은아들이 처음으로 하는 부탁을 부모가 되어서 딱 거절하기도 그렇고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요?
■해법=40여 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시고 퇴직 이후 본인의 생활은 연금으로 유지가 가능하지만 작은아들이 사업자금을 부탁하니 많은 고민이 되시는군요. 자식이 사업자금을 부탁할 때, 부모로서 자금 사정이 넉넉하다면 아주 기쁜 마음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불편하고 마음이 많이 무거우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요구가 처음이지만 반복될 여지가 있어 부모로서 기꺼이 해줄 수도 없고, 단호히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임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아마도 내담자께서도 주변에서 자식에게 사업자금이나 생활자금을 주고 나서 은퇴 이후에 경제적 곤란을 겪거나 자식과의 관계가 더욱 소원해지는 사례들을 접하셨을 거라 사료됩니다.
우리나라 노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대부분의 노부모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한 물질적인 혜택을 주고 자식이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자식에게는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면 자신의 노후 부양을 자식에게 기대하는 호혜적인 관계입니다.
가족 구성원 간에 이처럼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노년기의 생활 만족도를 증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통계에 따르면 노부모가 소유한 재산의 정도에 따라 성인 자녀와 관계에서 유대와 갈등 정도가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재산이 많을수록 자녀와 상호작용이 빈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는 독립하고 싶어 하나, 경제적으로는 오랫동안 기대고 싶은 심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청소년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3%는 대학 학자금을, 87%는 결혼 비용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으며, 또한 응답자의 74%는 결혼할 때 부모가 집을 사주거나 전세 자금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성인 자녀의 용돈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응답한 청소년도 76%나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91.2%가 부모의 노후는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 적금과 예금 등 부모가 알아서 대비해야 한다고 답했고, 자녀가 도와야 한다는 응답은 7.8%에 불과했습니다.
부모 세대는 성인 자녀를 평생 지원하느라 노후에 빈털터리가 되는 실정이지만 정작 자녀 세대 대부분은 부모의 노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통계들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은퇴 이후 노후 생활의 가장 큰 리스크가 자식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첫째, 자금 지원 여부를 떠나 기본적으로 모든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성인 자녀의 돈과 부모의 돈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상기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측면에서, 생활 속에서 묻어 나와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정리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은퇴 생활자들은 자신의 미래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자녀에게 돈을 주면 자신의 재정과 미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만약 자금 지원 후 미래의 삶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면 자금 지원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각한 가정불화의 상당수는 부모가 자신의 재산을 자녀에게 빌려주거나 사업자금으로 투자한 뒤 돌려받지 못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은퇴 자산관리 전문가에 의하면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경우 순자산의 5% 이내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조언합니다.
셋째, 만약 여유 자금이 있어 자녀를 도와주기로 했다면 그다음 문제는 돈을 그냥 줄 것인지, 아니면 빌려 줄 것인지를 결정하고 조건을 거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돈을 빌려주는 쪽을 택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면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데다 자녀들의 독립심도 유지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빌려주는 경우 조건을 명시한 대출 서류와 실행 가능한 대출 상환 스케줄을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업에 실패해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발생할 상황에 대해 가족 간에 진솔한 대화를 가질 것도 제안합니다. "사업이 잘못되더라도 우리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사업은 일시적인 반면 가족은 영원하다"라는 가족애의 중요성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돈 잃고 자식과도 소원해지는 것을 일정 부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녀가 전 생애를 살아가면서 필요한 정서적, 경제적 안정감과 독립심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교육적인 두 가지 선물은 흔히 '뿌리와 날개'라고 표현됩니다. 이러한 교육은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마음껏 날갯짓하면서 날아가도록 지켜보고 지지하는 편안한 노후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김정순(사단법인 한국은퇴연구소 전문위원, 대구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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