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종시 통신] 세종시의 잠자리

세종시에 공무원 군집생활족이 늘고 있다. 서울에서 이사하지 않은 '나 홀로 공무원' 서너 명이 아파트 한 채를 빌려 공동으로 생활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공동생활을 하게 된 이들은 보통 방 3개가 딸린 30평형대 아파트를 얻어 개인방을 만들어 지낸다. 방이라고는 하지만 침구 이외에 별다른 세간은 없다.

거실 상황은 더 빈약하다. 소파도, 그 흔한 TV도 하나 없다. 누구도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마련할 생각을 하지 않을뿐더러 '동거인'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집기를 들일 경우 돈 쓰고 욕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TV가 보고 싶을 땐 스마트폰으로 해결한다. 데이터가 고갈돼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을 경우에는 비상수단을 동원한다. 주방 싱크대에 달려 있는 보안용 화면을 활용한다. 여기엔 무료 DMB 시청이 가능해, 식탁 의자를 끌어 와 앉아 싱크대에 턱을 괴고 보는 식이다.

세종시에는 원룸족도 적지 않다. '군집족'은 초기 비용과 생활비가 적게 드는 장점이 있으나 개인 사생활 확보가 되지 않는 공동생활의 불편도 많다. 개인적 성향이 강하거나 여성의 경우 원룸을 선호한다. 한 달 월세는 보통 50만원가량이다.

원룸족의 부작용은 저녁에 술을 많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반기는 이 없는 빈집에 홀로 불 켜고 들어가는 처량함이 싫어서 늦게까지 이리저리 술을 찾아 헤매고, 취하고 나서야 귀가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자녀들이 장성했을 경우엔 '부부족'도 눈에 띈다. 부부만 세종시로 이사해 취미생활과 여가를 함께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내려온 경우다. 하지만 이런 뜻을 이루기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한 고위공무원의 경우 2년 전 부인과 단둘이 세종시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했다. 이 공무원은 남는 시간마다 부인과 어울렸으나 근무 시간까지는 같이 지내지 못했다. 친구도, 친척도, 지인도 없었던 부인은 결국 우울증에 걸렸다. 증상이 악화되자 공무원은 서둘러 퇴직하고 짐을 싸 다시 서울로 향했다.

세종시 공무원들의 잠자리를 위해 정부는 서울 여의도와 세종시 청사 인근에 단기 숙소를 마련하거나 추진 중이다. 이미 완공된 세종시 단기 숙소의 경우 하루 1만원이면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세종시에선 '단기 숙소 정책으로 공무원들의 세종시 이주가 타격을 받고 있다'며 반대여론이 강하다.

전국 최고 주택매매가 상승률을 경신하는 세종시지만 공무원들이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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