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이팝나무 꽃에 관한 단상

얼마 전 동문 한 사람이 갤러리를 오픈한다고 연락이 와서 가본 적이 있었다. 많은 예술인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이 열렸고 전시된 미술품을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미술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이 있어야 작품을 이해하고 즐길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나로서는 그저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둘러볼 뿐이었다. 동행한 팔순을 훨씬 넘긴 선배님은 어찌나 많이 아시는지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느낌을 말하며 작품을 대하는 모습이 나와는 사뭇 달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행사를 마치고 교통편이 어중간하다는 선배님을 자동차로 모셔 드리기로 했다. 때마침 이팝나무 꽃이 피고 있을 때라 선배님과 앞산 순환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과연 늘어선 이팝나무가 하얀 눈꽃을 덮어쓴 것 같이 만발해 있었다. 꽃송이 송이마다 갓 지은 쌀밥을 퍼 놓은 것처럼 탐스럽게 피어 온 거리가 환했다. 순백의 이팝나무 꽃을 한참이나 찬양하고 있을 때, 선배님은 "나, 이팝나무를 싫어해요"라고 하시며 굳은 표정을 지으셨다. 뜻밖이었다. 이유인즉슨, 예전에는 연례행사처럼 춘궁기가 있었는데 양식이 떨어지면 소나무 속껍질인 송기를 벗겨 먹으며 보리 바심 때까지 견뎠다고 한다. 그때 배고픈 사람들의 눈에 이팝나무 꽃은 마치 하얀 이밥처럼 보였을 것이라며, 그 시절의 가난과 배고픔을 다시 떠올리기 싫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우린 가난했던 지난 삶을 잠시 잊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팝나무에 얽힌 슬픈 전설도 있다.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 18세에 시집 온 며느리가 제삿밥을 지을 때였다. 평소 잡곡밥만 짓던 며느리가 처음 쌀밥을 짓다 보니, 밥이 잘 되었는지 궁금하여 밥알 몇 개를 떠서 먹어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니가 제사상에 올릴 밥을 며느리가 먼저 먹었다며 온갖 구박을 다 하였다. 구박을 견디지 못하던 며느리가 뒷산에 올라 목을 매어 죽으니, 죽은 이듬해 무덤가 나무에 하얀 꽃이 가득 피었다. 흰 쌀밥에 한 맺힌 며느리가 나무가 되어 하얀 꽃을 피웠다며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하였다 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이(李)씨인 임금이 흰쌀을 내려 쌀밥을 지어 먹을 수 있어 '이밥'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또 1년 중 여름이 시작하는 5월, 입하(立夏) 때 꽃이 핀다는 의미로 '입하나무'라 하였는데 그것이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전라도에서는 '밥태기', 경기도에서는 '쌀나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모두 쌀과 관련된 말로 나무 이름이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팝나무가 꽃을 풍성하게 가득 피우면 쌀농사가 잘 되어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는 설도 있어 풍년을 점치는 점쟁이 나무라고도 한다. 올해는 거리마다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수북수북 고봉으로 이밥을 담아냈으니, 방방곡곡 풍년이 들어 온 나라가 행복한 웃음으로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재순/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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