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자랑 값

자랑 값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너스레를 떠는 사람이 있어야 재미가 있고 흥이 나듯 자랑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누가 잘 되고, 누구네 집 아들이 성공했다는 등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기도 하다. 나이들이 모두 고만고만한 모임이고 보면 자랑거리도 대개 비슷비슷하여 어떤 땐 자랑만 하다가 끝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랑을 들어줄 사람의 존재이다. 자랑에 맞장구쳐 주거나 부러워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자랑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어버이날이 지난 다음이었다. 모두가 흐뭇한 자랑거리들을 가지고 모였다. 특히 손자 손녀 자랑이 주를 이루었다. 기어다니고, 일어서고, 걷고, 방실방실 웃는 것 모두가 자랑거리다. 너도나도 휴대전화 첫 화면에 활짝 웃는 손자 손녀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입에 침이 마른다. 아마 괴롭고 힘들 때, 휴대전화 화면 속 방긋 웃는 손자 손녀의 모습을 보면 힘이 날 것이다. 나 또한 예전에 몸담았던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수첩 속에서 웃는 삼 남매의 사진을 꺼내 보며 힘을 얻기도 했다. 어떤 이는 가족사진을, 또 어떤 이는 연인의 사진을 부적처럼 간직하면서 힘과 위안을 얻곤 할 것이다.

저마다 손자 손녀 자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자랑할 손자 손녀가 없는 한 사람이 제안했다. 이제부터 손자 손녀 자랑 한 번 할 때마다 자랑 값을 1만원씩 내기로 하자고. 또 한 번 까르르 까르르 웃다가 잠시 자랑은 잠잠해졌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자랑을 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린 누군가가 선뜻 1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놓고 자랑을 시작한다. 듣고 있던 다른 이도 뒤질세라 자랑 값을 내고 자랑 대열에 뛰어든다. 물론 모임에서 웃자고 한 일들이지만 손자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끝이 없다. 마치 손자 손녀와 열애하는 연인 같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대로 내가 낳은 자식보다 자식의 자식으로 태어난 손자 손녀가 더욱 사랑스러운가 보다.

딸이나 아들이 출가를 한 뒤 손자 손녀를 보는 것이니 그 자랑이 부모로서 책임을 다한 보람이기도 할 것이다. 입을 열지 않은 몇몇은 아직 손자 손녀를 보지 못했으니 그냥 웃기만 할 뿐 별말이 없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이지만 손자 손녀 자랑하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 서운하기도 하다. 손자 손녀 자랑을 하자면 우선 미혼 자녀들의 배필을 찾아 출가부터 성사시켜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아이들을 그대로 안고 살고 있으니 오죽하랴. 하지만 자녀들 짝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미혼 비율이 증가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1인 가구 수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시대가 온 만큼 무엇보다 아들딸들이 제 짝을 찾아 하나의 가정을 이루도록 부모는 물론 주변의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나아가 미혼남녀의 혼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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