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개봉된 프랑스 영화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는 로마의 골(Gaule) 지방 침입을 그린 코미디다. 시저의 군대가 골족의 작은 마을을 공격하자 꾀보 아스테릭스와 힘센 뚱보 오벨릭스가 통쾌하게 물리친다는 줄거리다. 이 영화의 원작은 1959년 프랑스 잡지에 처음 연재를 시작한 유명 만화다.
1편과 속편을 합해 모두 2천350만 명의 관객을 모아 '비지터'(1993년)를 누르고 역대 프랑스 영화 흥행에서 최고봉에 올랐다. 하지만 우리 관객의 눈에는 개그와 풍자, 재치를 빼면 그냥 웃고 떠드는 얼치기 희극이다. 주연배우 제라르 드빠르디유나 모니카 벨루치에 더 시선이 고정된 영화라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주인공 캐릭터에서 영화의 성공 요인을 찾는다. 용감하고 유쾌한 캐릭터가 프랑스인의 전형적인 모습과 겹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재치와 창의력으로 문제를 푸는 아스테릭스, 괴력의 소유자이면서도 섬세한 오벨릭스 콤비는 지혜와 힘의 상징이다. 작품성을 떠나 수다스럽지만 논리적인 프랑스의 문화코드가 녹아 있는 영화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정체성이나 문화코드는 어떤지 궁금하다. 사돈의 팔촌까지 병문안하는 관습이나 의료쇼핑, 난전보다 더한 응급실 환경은 그렇다고 치자.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메르스를 신종 전염병으로 확정한 뒤에도 태무심하다 뒤늦게 허둥지둥한 당국은 뭔가. 그 많던 나이롱환자가 병원에서 싹 자취를 감췄다는 신문 보도는 더욱 기가 막힌다.
정치권은 더 실망스럽다. '가납사니'(쓸데없이 말만 많은 사람을 뜻하는 우리말)는 많은데 지혜와 힘은 눈곱만큼도 찾기 힘들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4일 "병을 키워 문제를 만든 데 대한 책임은 지우겠다"며 보건당국 인책론을 꺼냈다. 여야 편싸움에 골몰해온 국회가 메르스와 한창 싸우고 있는 이들의 기를 꺾겠다니 퍽 현명한 처사다.
앞서 정부와 WHO 합동 기자회견장에 초대 없이 갔다가 제지당한 안철수 의원은 "정보 차단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책임 묻겠다는 사람 많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프랑스의 힘은 상류 엘리트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사회 지도층의 투철한 책임 의식과 의무감이 프랑스라는 나라를 지탱한다는 말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와 공직자를 믿다가는 신세 망친다는 소리 안 나올까 무서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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