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부산에서 벌어진 유괴 사건 실화를 영화화했다. 때는 서슬 퍼런 유신 말기였다. 두 차례나 유괴가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이다. '친구' '똥개' '사랑' '미운 오리 새끼' 등 곽경택 감독은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꼼꼼한 배경 묘사와 세밀한 지역 감수성을 유머로 승화하는 장기가 있다. '태풍'처럼 특급 스타 캐스팅의 블록버스터보다는, 자신이 경험했던 공간에서 자신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때 감독만의 특유의 색깔이 살아난다.
이번 영화 역시 부산이 배경이고,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출신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서울에 대해 지역민이 가지는 묘한 콤플렉스가 디테일로 구사되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아이 유괴라는 심각한 문제를 다루므로 영화는 코미디일 수가 없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이미 결말을 알고 있기에 범인 검거라는 긴박한 추적물 구조를 띨 수도 없다. 꽤나 풀기 힘든 실타래이지만, 감독이 선택한 요소는 바로 '사람'이고, 그의 선택은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형사와 점쟁이, 두 명의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범인 검거의 개가를 올리고 한 발짝씩 출세의 사다리로 올라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두 사람이 지켜내고자 하는 것은 아이의 목숨뿐이다. 37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보다 돈과 명예'에 관심을 두는 몹쓸 어른들의 세상은 여전하므로 이 영화가 지니는 의미는 현재적이며 우화적이다.
사람 살리기가 아닌 성과 올리기, 남의 성취를 빼앗고 입 씻기, 영웅을 비난하고 방해자가 칭찬받기 등 이 치졸한 관행들은 사라지지 않고 활개를 치며 우리 모두를 서럽게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러려니 체념하고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영화는 환기를 시켜준다. 이러한 각성의 순간으로 인해 영화보기의 묘한 쾌감이 일어난다. 이런 세상을 용인하기 때문에 분노를 잠재우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아서 언젠가는 분출시킬 때가 올 것이며, 해답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준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후 에필로그에 담긴, 노인이 된 모습의 실제 형사와 도사의 얼굴, 그리고 그들의 현황을 알리는 설명 자막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보통사람들이 만들어낸 세상이었다'는 것.
공길용(김윤석)은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사는 인물도 아니요, 자기 관할 사건이 아니면 별로 관여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평범한 형사다. 그런 그에게 별안간 초등학생 유괴 사건을 해결하라는 명이 떨어진다. 얼떨결에 사건을 맡았지만 그는 맡은 이상 잘 해결해 보자는 심정이다. 공길용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사를 극비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속이 타던 아이의 가족들은 무속인들을 찾아가 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하나같이 절망적이다. 그중 김중산 도사(유해진)만이 유일하게 희망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게다가 그는 공길용 형사의 사주여야만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공길용과 김중산은 뜻하지 않게 공조하며 아이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때는 1978년이다. 영화는 부마항쟁의 진원지이자 1979년 민주화 운동의 열기를 예고한 자잘한 거리 데모 현장에서 시작한다. 한 가정의 비극을 다루는 드라마이지만 당시 시대 공기를 전함으로써 일상의 삶은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언술하는 장면이다. 길용과 중산, 두 아웃사이더들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협심할 때, 경찰 조직의 간부들은 실적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언론은 엉뚱한 짓으로 작전을 교란시켜 버린다. 최근 발생하는 굵직굵직한 사건 행태들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현장을 목격하자니 가슴이 요동치며 통증이 느껴진다.
퀄리티와 메시지가 조화를 이루는 영화로 곽경택 감독의 새로운 대표작이 될 것이다. 김윤석은 이번에도 형사 역을 맡았지만, 그간의 매너리즘을 벗고 새로운 유형의 형사를 창출함으로써 연기 인생의 새 장을 연다. 도사 역의 유해진은 이번에는 코믹 감초 조연이 아니다. 진지한 정극 연기의 주연도 잘하는 배우임을 명백히 입증해낸다. 최근 보기 힘들었던, 퀄리티, 재미, 의미를 골고루 갖춘 제대로 된 범죄 드라마의 등장이 마냥 반갑다.
영화평론가'용인대 영화영상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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