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수정안 거부권 행사는 정당
유승민 퇴진 압박은 삼권분립 위배
속이 뒤집어져도 대화로 설득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여야 정치권을 싸잡아 비토한 뒤, 정치권의 향후 시계(視界)는 제로 상태다. 박 대통령이 현실 정치권에 가한 맹폭의 요지는 세 가지다. 우선은 국회가 도와주지 않아서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어렵고, 다음은 한배를 탄 집권 여당의 원내 사령탑이 정부의 경제살리기에 국회의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며, 마지막은 오로지 이기기 위해서 선거를 이용하고 '배신하는 정치' 대신에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부가 시행하려는 일자리 법안과 경제살리기 법안이 '가짜 민생 법안'이라고 야당이 발목 잡아 3년째 통과시켜 주지 않아 청년 일자리 창출을 해볼 기회마저 빼앗기고 있으며, 국민 삶을 볼모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구태 정치를 끝내야 하며, 선거에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를 국민께서 심판해 달라고 했다. 마치 국회와의 타협 정치를 포기하고, 국회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을 향해서 직접 다가가겠다는 승부수를 던진 것처럼 보인다.
우선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잘한 것이다. 국회 법사위원회 위원장이 야당 몫인 데다가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해서 160석을 가진 거대 여당이지만 법안 처리 하나 못 하는 가운데 그나마 행정 입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행정부의 발목을 잡겠다는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로 되돌려보낸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기에 새누리당은 대다수 의원이 가결표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로 되돌아오면 자동 폐기 순서를 밟겠다고 천명했다. 국회 일정을 보이콧한 야당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함께 갈 수 없다"고 콕 찍어서 얘기한 부분이다. 지난 25일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퇴진 시위'를 당한 유 원내대표는 '죄송하다. 마음을 푸시라'고 청와대를 향해 거듭 사죄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선진화법의 틀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해명이 청와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유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한 새누리당 긴급 최고위원회는 오늘 오후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공무원연금법과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시키는 것을 받아준 유 원내대표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사퇴 압박은 재고되어야 한다.
바로 '제 자식론'과 삼권분립의 정신 때문이다. 자식이 잘났든 못났든 부모는 그를 버릴 수 없고,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를 향해 대놓고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이 헌법 수호의 책임을 졌다면 여당 원내대표는 삼권분립의 한 축이다. 섭섭하지만 삼권분립의 정신은 존중되어야 하고 여당의 원내대표는 껴안아야 한다. 때로는 속을 썩이고 좀 맘에 덜 들어도 한 식구이지 않은가.
남북 전쟁 때 링컨 대통령은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입니다. 서로 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고 호소했다. 전쟁 직전의 격렬한 분열상을 보이던 때에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취임 첫 연설에서 찢어질 대로 찢어진 남부와 북부 국민들을 설득하며 '미국 공동체'를 다시 짜는 기회를 갖자고 호소했다. 한 번만이 아니다. 암살 직전까지 계속 그런 입장을 견지했다.
리 장군이 이끄는 남부군이 항복하고 이틀 뒤에 행해진 연설에서도 링컨은 연방을 탈퇴한 남부 패자들이 미합중국에 속하지 않는다는 답을 달라는 북부 군중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그것은 우리를 갈라놓는 유해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거부하다가 사흘 뒤 암살당했다. 패자 남부를 향한 너그러운 포용의 자세를 견지했던 링컨의 정치 철학이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놓았다. 박 대통령에게 또다시 이런 포용력을 요구해야하는 한국의 정치현실이 참 안타깝다.
심의실장 겸 특임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