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 TPP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
오바마, 공화당과 손잡고 무역법안 채택
'배신의 정치·질타 대신 손 내민 용기 감동
국가 미래·국민 삶 위한 올바른 정치 희망
지난달 1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정치권이 충격에 빠졌다.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관련 법안이 하원에서 부결됐기 때문이다.
TPP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역점 과제의 하나이다. TPP는 단순히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을 넘어선다. 동반자(Partnership)란 이름으로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한데 묶음으로써 중국 세력의 확대를 저지하려는 미국 안보전략의 핵심이다.
더 큰 충격은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찬성이 40명, 반대가 144명이나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후원자이던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반대' 의사를 공언함으로써 사실상 소속 의원들의 반대를 유도했다. 이런 엇박자 배후에는 선거를 의식한 의원들의 행보가 있었다. 의원들에게는 국익을 앞세운 대통령의 호소보다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층인 노조의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레임덕'(lame duck)을 넘어 '데드덕'(dead duck) 위기에 몰렸다는 성급한 분석까지 나왔다.
반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원은 6월 18일, 상원은 6월 24일 각각 오바마 대통령에게 TPP 협정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무역촉진권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극적인 역전을 이룬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친정인 민주당과 원내대표의 '배신'을 탓하는 대신, 야당인 공화당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어진 정치적 상황들도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판 전 국민 건강보험인 '오바마 케어'가 대법원에서 합헌 판결을 받았다. 흑인을 겨냥한 총기 난사 사건이라는 비극도 오바마 대통령이 심금을 울리는 장례식 연설로 감성적 지지를 한층 끌어올리는 계기로 만들었다. 임기 말의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나드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미국 정가를 바라보던 시선을 우리에게 돌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최근 정치권의 가장 큰 논란거리는 무언지 일별해 본다. '배신의 정치'를 내뱉은 대통령의 진노, 여당 원내대표의 거취, 국회법 개정안 논란, 친박과 비박의 힘겨루기, 친노와 비노의 집안 싸움, 신당 창당론, 공천 혁신 등 정치인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인지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국민과 나라의 미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주제들이다. '배신의 정치'를 질타하는 대신 먼저 손을 내밀어 상황을 반전시킬 정치력은 없는가? 여당의 원내대표를 의원들 손으로 쫓아낸 다음은 무엇인가? 법 해석에서부터 위헌 논란을 자초하는 국회가 국가대사를 처리할 실력은 있는가? 누가 박근혜 대통령과 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더 친하냐를 두고 다투면 뭐가 달라지는가? 결국 내 공천 보장하라는 협박 정치가 아닌가?
TPP는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미국 주도의 TPP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게 엊그제 일이다. 우리의 국익에도 초미의 관심사인 것이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로 연타를 맞은 자영업을 비롯해 경기는 한없는 침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에 치이는 산업구조는 부활할 희망이 없어 보인다. 부동산을 살리려 풀기 시작한 돈으로 가계부채는 1천100조원을 넘어섰다.
인구는 줄고 청년실업 100만 명 시대를 맞아 우리 아이들은 우리보다 못한 삶을 감수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안보 어느 하나 출구를 찾기 어려운 엄혹한 시대인 것이다.
미국 정치를 본받자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국가의 미래전략, 국민의 삶이 정치의 중대 이슈가 되는 게 부럽다는 말이다. 정치란 모름지기 국가적 과제에 관심을 가지고 국가와 민족의 대사를 논하는 장이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에 대해 밤을 새워 머리를 짜내도 부족한 시기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계파싸움과 자잘한 다툼으로 날을 지새우는 것은 민망함을 넘어 절망감을 줄 뿐이다. 정치권도 언론도 정치적 담론의 수준을 높이자.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위한 문제 해결책이 정치의 진정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경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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