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고 있는 공연의 무대장치에 관해 상의할 일이 있어 지난 주말 친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친구의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말에 점심을 대충 먹고 약속시간에 맞춰 가르쳐준 주소를 따라 친구의 사무실로 향하였습니다. 찾기 쉬울 거라던 친구의 말과 다르게 낯선 동네, 낯선 거리를 한참 헤매고서야 친구가 말해준 골목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초등학교가 보일 거라고 했는데, 친구 말대로 조그마한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손바닥처럼 작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축구를 하는 몇몇 아이들을 빼면, 학교는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간간이 아이들의 고함이 들렸고, 운동장이 작고 예쁘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바로 학교 앞 문방구의 오락기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게임을 하는 아이들과, 그 옆 작은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재잘거리는 몇몇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그때, 전자오락실과 만화방 그리고 분식점은 남다른 놀이터였습니다. 특히 비디오가 귀했던 시절, 떡볶이 한 그릇을 사먹으면 쿵후영화를 볼 수 있었던 분식점은 꽤 자주 다닌 곳이었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흉내 내는 걸 좋아했던지 친구들과 전날 보았던 쿵후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 내며 마치 절세고수가 된 듯 '피육 피육' 소리를 내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비디오를 보며 매운맛에 입 안 가득 얼얼한데도 친구보다 먼저 먹으려 젓가락질 싸움을 하던 그 떡볶이의 맛은 쉽게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야채며 어묵이며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국물만 멀건 떡볶이지만 왜 그리 맛있었던 걸까요?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아니면 떡볶이를 친구와 함께 먹어서 맛있었던 건지. 이유야 어떻든 그때 먹었던 떡볶이가 지금까지 살며 먹어본 그 어떤 떡볶이보다 가장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의 회상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이내 분식점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반갑게도 어린 시절에 먹었던, 국물이 멀겋고 떡가래가 가느다란 떡볶이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간 온갖 양념과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떡볶이에 길들었지만,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2인분을 주문하고는, 주인아주머니와 그 옆에서 맛있게 떡볶이를 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았습니다. 녀석들은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먹고 있는 멀건 떡볶이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였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이 모든 광경에 나도 모르게 울컥해졌습니다. 해지는 오후 하늘,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의 모습, 그 아이들의 고함, 그리고 동네 골목길에서 강아지가 '컹컹' 짖는 소리. 마치 제가 그 옛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생경스럽지 않은 풍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떡볶이를 포장해 친구의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반길 줄 알았던 친구 녀석으로부터 핀잔을 들었습니다. 뭐 이런 걸 사오느냐고. 이 친구 어릴 때 떡볶이도 안 사먹어 본 모양입니다. 후후, 낭만도 모르는 녀석.
안건우/극단 시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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