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도로'라고도 불리는 88올림픽고속도로(이하 88고속도로)가 오명을 씻고자 탈바꿈하고 있다.
88고속도로는 영'호남 화합을 취지로 1984년 6월 27일 개통됐지만 국내 고속도로 중 유일하게 중앙분리대가 없고 급커브 구간이 많아 인명피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올 들어서도 2월과 4월 두 번의 대형 사고가 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18일 오후 10시쯤에는 전북 남원시 아영면 88고속도로 하행선 지리산 휴게소 입구에서 오모(69) 씨가 몰던 1t 트럭과 마주 오던 4.5t 트럭이 충돌해 오 씨 등 1t 트럭에 타고 있던 5명이 모두 숨진 사고가 났다.
현재 이 도로는 확장 및 직선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왕복 2차로를 4차로로 확장하고 노선을 바로잡는 공사가 시작된 것은 2008년부터다. 이제 그 끝이 보인다. 20일 국토교통부는 "중앙선 침범 등으로 인한 안타까운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88고속도로 확장공사를 당초 계획보다 1개월 앞당겨 올 11월 말 개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매일신문이 88고속도로 제2의 개통을 앞두고 '아듀! 죽음의 도로'를 준비했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직접 달려본 181km
전남 순천이 고향인 강경구(61'대구 서구 평리동) 씨는 1991년 3월부터 2010년까지 매주 한두 번은 88고속도로로 고향에 있는 부모님 댁을 오갔다. 강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2010년부터는 매월 3, 4회 이 고속도로를 이용해 고향 마을을 다녀온다. 지난달 강 씨는 88고속도로로 대구에서 광주로 가던 중 거창IC 램프 구간에서 사고를 당할 뻔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대형 화물차가 강 씨의 차를 무시하고 도로에 무작정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날 강 씨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강 씨는 "아내가 위험하다며 다른 길로 다니라고 하지만 88고속도로가 시골길 같은 정겨운 느낌이 들어 자주 이용한다"며 "그런데 88고속도로에서 대형차를 따라가다 보면 앞에서 벌어지는 돌발 상황을 몰라 아찔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길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88고속도로 운전이 처음인 기자가 그 현장을 가보았다.
◆여기는 공사 하지 않는 곳인가요?
대구에서 출발해 광주까지 가는 88고속도로. 181㎞에 달하는 길을 직접 체험해보려 길을 나섰다. 지난 17일 오전 집을 나선 기자는 느긋한 마음으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88고속도로의 제한 속도가 시속 80㎞이니 서두른다고 해서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다. 확장 공사가 끝난 고령까지의 길은 널찍한 데다 차량도 그리 많지 않아 여유로운 주행이 가능했다.
그런데 경남 합천군 청현교 인근 오른쪽으로 굽은 오르막길에서 대형 화물차 1대가 갑자기 감속했다. 바로 뒤따르던 1t 트럭 브레이크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뒤이어 주행 중이던 승용차 2대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1t 트럭 바로 뒤차는 전방 상황을 모른 채 밟은 브레이크로 급제동이 됐고, 그 뒤에 오던 차는 겨우 추돌사고를 면할 정도의 간격을 두고 멈췄다. 오르막에 진입하면서 대형 화물차가 저단 변속하면서 생긴 일이다. 그 후로 오르막이 끝날 때까지 차량들은 모두 화물차에서 멀찍이 떨어져 주행했다.
이번 공사로 88고속도로의 모습이 가장 크게 바뀌는 구간은 경남 합천군 해인사IC에서 거창군 가조IC 사이다. 이 구간을 달리다 보면 '확장 공사를 하지 않는 구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구간에는 확장 공사를 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직선화 공사를 하고 있다. 이 구간 기존 노선은 광주 방향으로는 오르막, 대구 방향으로는 내리막이 이어지는 구간이다. 88고속도로가 편도 1차로 도로인지라 오르막과 내리막 모두 선행하는 화물차가 저속 주행하면 뒤따르는 차량은 모두 거북이 행렬이 이어진다. 그래서 한국도로공사는 이 구간에만 터널 6곳을 뚫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직선화 공사가 마무리되면 기존보다 거리가 5㎞ 정도 단축된다고 한다.
◆88고속도로에 중앙분리대가?
88고속도로 지리산IC를 지나 광주로 가는 길에는 듬성듬성 중앙분리대가 보인다.
88고속도로는 중앙분리대가 없는 유일한 고속도로로 유명하다. 경북 고령에서 경남을 지나는 동안에도 중앙분리봉만이 상'하행선을 구분하는 전부였다. 그런데 전북에서부터는 중앙분리대가 있는 구간이 종종 있는데 이는 모두 새로 만들어진 도로이다. 그래서 기존 88고속도로의 낡은 포장이 아닌 깨끗한 아스팔트 도로가 이어진다. 게다가 도로를 따라 중앙분리대가 놓여 있다. 시선을 조금 돌려 중앙분리대 너머를 보면 한창 중장비가 땅을 파거나, 뚫거나, 다지고 있다.
지리산 휴게소에서 만난 한 공사 현장 관계자는 "지금부터 광주까지는 모두 새로 만든 도로이다"며 "기존 노선과 확장 노선을 구분하려고 중앙분리대를 설치해뒀으며, 현재는 기존 노선을 뜯어내고 새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운전자들은 이제 막 이 구간 공사를 시작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업무 차 대구에서 광주로 가던 이항영(32) 씨는 "올 연말에 확장 개통한다고 하는데 이제 땅을 파고 있으면 과연 기간 내에 끝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했고, 강경구 씨 역시 "이 도로를 만들 당시 이용자의 안전보다 개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급하게 만들어 지금 같은 꼴이 됐다"며 "몇 곳은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하던데 졸속으로 할 거면 공사 기간을 늦춰서라도 잘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확장 개통을 앞둔 기대감
88고속도로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은 벌써 확장 개통에 대한 기대감에 차있다.
과거 88고속도로의 높은 치사율에 한몫한 중앙선을 침범해서 추월하는 모습은 중앙분리봉 설치 덕분에 사라졌지만, 갓길을 이용한 추월을 실제로 자주 볼 수 있었다. 경남에서 전북을 자주 오가는 개인용달 사업자 김모(61) 씨는 화물을 싣고 88고속도로를 다니면 빨리 달릴 수 없어 뒤차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그나마 몇 군데 있는 비좁은 갓길을 뚫고 추월하며 달리는 승용차 때문에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잦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확장 개통이 되면 그렇게 미안한 마음이 들 일도, 추월 차량 때문에 놀랄 마음이 들 일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크레텍책임 로지스부 관계자도 "그간 편도 1차로를 매일 장거리 운전하는 직원들의 사고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앞으로 왕복 4차로로 확장 개통이 되면 호남지역으로 운송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88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니 휴게소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181㎞나 되는 긴 여정에 휴게소가 2곳뿐이기 때문이다. 편도 1차로 도로인지라 한참을 같은 차 꽁무니를 쫓아가다 보니 피로감도 쉬이 느껴져, 휴게소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기도 했다.
대구방면 지리산휴게소 편의점 직원은 "당분간은 88고속도로가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참으면 확장 개통한다"며 "그렇게 되면 영남권에서 지리산 등 호남의 여러 명산으로 접근성이 좋아지니 많이 찾아달라"고 말했다.
글 사진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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