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사장인데 50만원만…" 깜빡 속은 대기업 직원들

전화 사기 행각 뻔뻔한 50대 구속…신문 부고 보고 친인척관계 외워

대기업 임원을 사칭, 지방 건설현장에서 금품을 뜯은 간 큰 50대 사기범이 구속됐다. 전화를 통한 너무도 뻔한 수법이었지만 대기업 현장 직원들은 '당당한 요구'에 꼼짝없이 속아 넘어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은 대기업 건설 현장을 돌며 금품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J(55)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J씨가 첫 범행을 저지른 것은 지난 4월쯤. 목표는 포항~울산 간 도로 건설을 맡고 있던 A기업이었다. J씨는 A기업 포항 현장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나 부사장 OOO인데 내 조카가 포항에서 출장 중 택시에서 지갑과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내가 지금 서울 한 호텔에서 정부 관료들과 미팅 중이라 일을 처리할 수 없으니 대신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조카를 찾아 현금 50만원만 주라"고 했다.

뻔한 거짓말이었지만, 너무도 당당한 목소리와 실제 부사장의 이름, 형제와 조카의 이름까지 줄줄이 말하는 J씨에게 현장직원은 깜빡 속아 넘어갔다. 무엇보다 겨우 50만원의 돈 때문에 부사장 사무실에 전화해 확인하는 모험을 벌이기에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약속된 A기업 유니폼을 입고 포항시외터미널에 도착한 직원 앞에 나타난 인물은 J씨 자신이었다. 부사장부터 그 조카까지 1인 2역을 소화한 셈이다. 50만원을 받아든 J씨는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덕담까지 건네며 유유히 사라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실제 부사장이 당시 서울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현장 직원은 그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범행 후 한 달여가 지나고 J씨는 또다시 포항~울산 간 도로 건설을 맡고 있던 B기업에 똑같은 수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B기업 현장직원은 부사장 사무실에 사실 확인을 했고 비서로부터 "부사장을 사칭하는 인물이니 잡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현장에 도착한 B기업 직원은 자신이 잡기 전 J씨가 경찰에 체포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때마침 현장 인근에서 볼일을 보던 A기업 직원이 J씨를 우연히 발견, 경찰에 먼저 신고했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결과 J씨는 젊은 시절부터 같은 수법으로 대기업 현장사무소에서 금품을 가로채 교도소를 들락거린 것으로 드러났다.

J씨 사기 행각의 최고 주무기는 바로 신문이었다. 평소 신문을 꼼꼼히 읽던 J씨는 부고란에 적혀 있던 사회고위층의 인척관계를 줄줄이 외워 사기에 써먹었다.

대구지검 포항지청 김혜림 검사는 "한 번만 돌려 생각하면 무척 단순한 보이스피싱인데 J씨는 일부러 급박하게 약속시간을 잡고 고압적인 태도로 직원을 압박하는 등 대담한 행동을 보였다"면서 "대기업 직원들의 심리를 이용한 웃지 못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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