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8월 7일 오전 10시 30분 박경원이 도쿄, 서울, 만주, 창춘에 이르는 2천㎞ 비행을 위해 '청연호'를 몰고 하네다공항에서 이륙했다. 그러나 악천후로 인해 50분 만에 하코네 중턱에 추락했다. 청연호의 동체는 두 동강 났다. 그녀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채 핸들을 잡고 자는 듯 숨져 있었다. 1년 뒤 그녀의 격납고에서 발견된 일기에는 "나의 연인은 비행기, 창공은 즐거운 가정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인 박경원은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 기예여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2년간 간호사로 일했다.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7년 1월, 3등 조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부터다. 이때 '아폴로 200마력기'를 절묘하게 몰아 시험관들을 경탄시켰다. 1928년 7월에는 도쿄에서 열린 비행경기대회에서 3등으로 입상, 숙원이던 2등 비행사 시험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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