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직접 보도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도 이번 북한의 도발은 내심 불안했다. 남북 간의 긴장 상태가 지난 정부부터 오래 지속돼 왔고, 나이 어린 김정은 위원장의 막가파식 국가 운영 때문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 더 두려웠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고조에 휴가를 나갔던 장병들에게도 긴급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전방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동서울터미널에서 부모와 작별 인사를 하는 장병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며칠 전 지뢰 폭발 사건으로 꽃다운 나이의 두 장병이 다리를 잃는 부상을 당한데다 실제 포격전이 벌어진 준전시 상황에 아들을 부대로 돌려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예전엔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분단의 현실이 무섭게 다가왔고 내 아들만은 위험한 지역에 가지 않길 바라는 이기심이 발동했다.
아들을 둔 부모라면 당연히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 치부했다. 그런데 한 여론조사를 보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27일 국민안전처의 '2015 국민 안보의식 조사' 결과 19세 이상 일반 국민 중 83%는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남성은 참전하고 여성은 전쟁을 지원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특히 안보 의식이 약하다고 알려진 20대에서 79%가 참전에 긍정적이었고 50대는 9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민의 대다수가 내 목숨을 바쳐 국가를 위해 싸우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가히 놀랄만한 수치다.
성숙한 시민 의식은 단순히 여론조사의 응답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전역을 앞둔 병장 87명이 "전역을 미루겠다"라며 애국심을 불태웠다. 이미 전역한 예비군들도 장롱 속에 넣어둔 군복과 전투화를 꺼냈다.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뛰어나가겠다"는 글들이 SNS에 잇따랐다. 대북 확성기로 심리전에서 밀린 것으로 알려진 북한군과는 정반대로 우리 장병들은 의기투합했다. 이에 감동을 받은 한 중소기업인은 "전역을 미룬 장병을 우선 채용하겠다"고 발표했고, 대기업까지 여기에 동참했다. 대한민국의 멋진 장병들과 하나 된 모습을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감동적인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관(官)에서 터졌다. 지난 22일 늦은 밤 불꽃놀이가 김포시 하늘을 뒤덮었다. 해당 지자체가 허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수의 시민이 북의 포격 소리인 것으로 착각해 놀랐고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더군다나 경기도 김포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1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 시간 판문점에서는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리고 있었고, 북은 잠수함과 화력부대를 전방에 배치하고 있었다. 시흥시에서도 같은 날 밤 축포를 쏘아 올렸다.
징병을 담당하는 부산병무청은 한발 더 나갔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1일 예비군 1천600여 명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전시대비 통지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마치 전시 상황이 벌어져 예비군에게 동원령을 내린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국방부는 이 문자메시지가 유언비어라고 발끈하는 입장을 발표했다가, 뒤늦게 부산병무청의 메시지라고 정정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남북 고위급 접촉은 다행히 극한 대치를 푸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박근혜의 원칙이 통했다', '김관진과 홍용표가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펼쳤다' 등 정부와 군 당국은 자화자찬에 빠진 모습이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 후 대화, 대화 후 뒤통수를 치는 전략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래서 얼빠진 관(官)의 행태를 해프닝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위기 상황에서 믿을 수 있었던 건 공공이 아닌 시민의식이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우면서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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