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언론자유영웅 50인, 몽향 최석채 주필 '필화'사건 60주년 릴레이 기고]

③ 한국 언론사에 '학도' 사설이 미친 영향

몽향 최석채와 그의 대표적인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짧은 한국 언론사에서 근대정신을 완성해 이를 한국 언론에 체화하게 만든 중요한 인물이자 사건이다. 서재필, 배설, 윤치호, 신채호 등 한국 언론의 역사를 시작하고, 이끌어간 근대적인 의미의 위대한 언론인들이 많았으나, 한국 언론의 근대화를 완성하고 이를 후세에 전달한 인물로는 최석채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사설은 한국 언론의 기저에 도도히 흐르는 '우국지사적' 맥락을 이어가며, 저널리즘의 사상적, 내용적, 형식적인 측면을 통틀어 근대화를 완성했다는 데 큰 의미를 갖는다.

서양 언론과 비교되는 한국 언론의 특성은 '지사'(志士)적 언론이다. 한국 언론은 시민의식이 성숙되지 않은 채, 열강들의 탐욕에 갈팡질팡하는 대한제국의 현실 속에서 시작되었다. 당연히 정보의 전달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열변과 계몽이 우선이었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유명한 기사이자, 논설은 그런 시대적, 언론사적 상황에서 나왔다.

또한 당시 언론은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낯선 글일 정도로, 기사의 형식이나 문장도 정립되지 않았다. 기사 내용도 사실 확인이나 객관주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카더라' 형식이거나, 주장들로 채워졌다. 시민에 봉사하는 객관적 보도라는 근대 저널리즘이라기보다는, 전근대적인 당파적, 주창 저널리즘에 가까웠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해방 공간을 맞아 주창적인 당파적 저널리즘은 더 심해졌고, 그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던 1950년대, 최석채는 지사적 언론의 맥을 이으면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근대 언론의 모습을 완성했다. 그러므로 그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범세계적인 언론인이었던 것이다. 그를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2000년 5월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세계언론자유영웅 50인'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를 언론인으로 각인시킨 '학도' 사설은 사설의 특성상 주장이 강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매우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물론 권력에 대한 두려움 없는 비판은 선언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사설에 나타난, 정부 인사 방문에 학생을 동원한 사실에 대한 정확한 팩트의 적시, 그것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입장 표명, 변명 가능한 다양한 경우까지 고려한 논지의 전개, 정부와 기성세대의 역할, 교육의 의미와 방향, 건전한 시민사회의 모습까지 표명한 민주적 가치의 절대성은 시민사회의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정신의 완성이다.

이 사설을 통해 그는 서재필이 보여준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과학기술적 사고, 장지연의 지조, 신채호의 언어 조탁, 홍명희의 객관 보도 등 선배 언론인들의 근대적 저널리즘 가치들을 완성하면서 후대 언론인들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역할과 저널리즘의 갈 길을 명확히 했다. 또한 그는 1964년 이른바 언론윤리법 파동 사건을 통해 언론의 윤리는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강제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하여, 언론 자율 규제의 전통을 확립했다.

그는 백범 김구의 다음과 같은 휘호를 자택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걷는 발자취는 후세인들에겐 길이 되느니라."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이 글처럼 그의 발자취는 한국 언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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