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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에 3시간짜리 사설…머리 아닌 '몸의 기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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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흥부가 완창 무대 선 정순임 명창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정순임(74) 명창이 지난 19일 서울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판소리 '흥부가' 완창 무대를 가졌다. 이번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무대는 2010년 10월 이후 5년 만에 오른 것이다. 흥부가 완창에는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지난 17일, 경주 자택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 정 명창을 만났다.

정 명창은 '심청가'와 '흥부가' '수궁가', 창작판소리 '유관순 열사가' 등 열댓 번이 넘는 완창 무대를 가져온 명인 중의 명인으로 손꼽힌다. 15세 때부터 지금까지 천 번도 넘는 수많은 무대에 서 온 정 명창이건만 이번 무대는 유독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 올해 나이 74세. 3시간에 달하는 판소리 사설을 온전히 외우고 에너지를 쏟아낸다는 것이 힘에 부칠 나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판소리는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인생'이다.

"총기가 옛날 같지 않제. 가사를 잊어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는 한디, 그래도 평생을 해 온 일인데 몸이 알고 있지 않을까 믿는 거여." 머리로 외워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기억하는 습관이다 보니 74세의 나이에도 충분히 완창 무대를 소화해 낼 수 있는 내공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정 명창은 "판소리의 매력은 한 편의 1인극과도 같다는 점"이라면서 "호소력 있는 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희로애락을 무대 위에서 온전히 녹여낸다"고 했다. 이런 마력 덕분에 짧게는 3시간, 길게는 8시간(춘향가)이 걸리는 완창 무대도 흠뻑 빠져들어 감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정 명창이 소리를 시작한 것은 7세 때였다. 그의 어머니는 소문난 명창 장월중선이었고, 그의 집안은 3대를 이어온 '판소리 명가 제1호'로 지난 2007년 문화관광부 지정을 받을 정도로 타고난 끼를 자랑하니 당연히 예정된 수순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의외로 장월중선 선생은 정 명창이 소리꾼이 되겠다는 데 대해 매까지 휘두르며 반대를 했다고 한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예인(藝人)으로 살아가기는 더욱 힘든 환경이다 보니 자식이 그 춥고 배고픈 길을 걷겠다는 걸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단다.

"그래도 자식은 못 당하는 게 부모잖어. 결국은 어머니가 포기하고 정식으로 소리를 가르쳤는데, 도저히 당신 자식은 못 가르치겠다고 전라도 보성 정응민 선생님에게 보내버리기도 했었제."

정 명창의 타고난 끼는 판소리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었다. 장월중선 선생이 무용과 기악에 두루 능했던 것처럼, 정 명창은 15세 때부터 국극단을 따라다니며 익힌 수준급의 연기력이 있었고, 대중가요를 부르는 데도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덕분에 소리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 또 다른 재능으로 위기를 넘기며 소리꾼으로서의 길을 계속할 수 있었다. 30대에는 일본 전역 순회공연을 하다 작곡가 길호윤 씨로부터 대중가수가 돼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고, 40대에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기획사 영입 제의를 받기도 했다. 정 명창은 "외도를 할 기회는 참 많았는데, 그래도 소리 인생을 지켜왔기에 지금의 모습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이제 판소리에 있어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경주에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일가를 이룬 정 명창. 그는 67년 판소리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절이 언제냐는 기자의 질문에 해맑은 얼굴로 '지금!'이라고 답했다.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서울 생활을 접고 1998년 경주로 돌아온 만큼, 이제는 어머니께 부끄럽지 않을 업적을 만들어냈다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는 매년 '경주 판소리 명가 장월중선 명창대회 및 추모공연'을 개최해 오고 있고, 제자들도 곳곳에서 약진 중이다.

한윤조 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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