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게이트 키퍼

A군은 특목고에 다니며 성적도 좋은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난데없이 회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그리고 얼마 뒤 투신자살로 세상을 등졌다. A군의 어머니는 가눌 수 없는 후회와 죄책감에 얽매였다. 특히 머리를 염색한 것이 이상 징후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가슴을 치고 또 쳤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A군의 방에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무슨 염치로 햇빛을 볼까'라는 생각에 외출도 하지 않고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급기야 3개월 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했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다 아는 '자살공화국'이다. 2013년 대한민국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7명으로 OECD 34개 국가 평균(12.0명)과 비교해 2배가 훨씬 넘는다. 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대구소방본부는 하루 평균 1명꼴로 자살 사망자 신고가 들어온다고 했다. 신고되지 않거나 사인을 숨기는 경우를 고려하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냉담하다. 자살을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자살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살은 말하지 말아야 하는 주제'라는 질문에 무려 46.1%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자살 사망자 수가 심각한 수준인데도 자살을 금기시하고 쉬쉬하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그러는 사이 '남겨진 이들'은 혹독한 고통에 방치되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도 모자라 힘듦을 누구에게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해야 한다. 자살 유가족은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대구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 따르면 1명의 자살 사망자가 발생하면 자살 시도자는 20~40명이나 된다. 한 해 우리나라 평균 자살 사망자가 1만5천 명인 것을 고려하면 최대 60만 명이 자살을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위에 1명이 자살을 시도하면 불안과 우울증 등 직'간접적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보는 이는 최소한 6명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 해 평균 부산 인구에 맞먹는 360만 명이 자살과 관련해 영향을 받는 셈이다. 단순한 수치 놀음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 가족이나 친구, 이웃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 유가족은 일반인보다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6배 이상 높다. 언제든지 자살할 수 있는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 한 자살 유가족은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벗어날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고통에서 해방되고픈 마음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건강도 해치기 쉽다. 연세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은 심혈관질환이나 당뇨병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질 위험도가 일반인보다 최대 2.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김정은 팀장은 "자살 유가족은 자살을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트라우마는 사실상 혼자서는 극복하기 어렵다. 무엇이 가장 괴로운지를 경청하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사회적인 관심과 공감, 위로가 그들을 감옥 같은 현실에서 건져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는 '자살률, OECD 1위'라는 자극적인 통계치에 열을 올렸지, 막상 자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부족하다. 정부 또한 이에 대한 인식과 노력에 인색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일본은 한때 우리나라보다 자살률이 높았지만 효과적으로 줄여나갔다. 막대한 예산 지원이 한몫했지만, 사회가 자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자살 유가족의 슬픔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게이트 키퍼'(gate keeper)라는 것이 있다. 주변 사람들의 자살 징후를 파악해 적극적으로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적절히 대처를 하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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