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90년대 어릴 적 도시락 반찬으로 가장 인기를 누렸던 추억의 소시지, 지금도 어린이'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 중의 하나인 햄. 대한민국 최고의 반찬이자 간식인 햄과 소시지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놓였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햄'소시지류의 가공육을 1급 발암물질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뉴스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자녀들의 식단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들은 더 화들짝 놀랐다. '햄'소시지가 발암물질이라니! 그것도 1급.'
이번 주 '즐거운 주말'은 '햄'소시지, 먹을까 말까'라는 주제로 이들 먹거리를 진단해본다. 특정 이슈가 떠오르면 앞뒤 따져보지 않고 들끓는 냄비 근성 때문에 거두절미하고 '햄'소시지는 1급 발암물질'이라는 화두가 무분별한 오해와 억측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부터 시작해 안전한 육류 섭취법, 요리법, 대체재, 웰빙 자연식, Q&A 등 햄'소시지 그리고 먹거리를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담배만큼 해롭다고? 그럼 '금육' 해야 하나…WHO발 '1급 발암물질' 괴담, 진실은
무서운 얘기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햄'소시지가 1급 발암물질이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국민은 헷갈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까지 맛있게, 자주 잘 먹어왔던 음식을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음식으로 분류했다. 특히나 믿을 만한 국제기구인 WHO가 이렇게 발표했으니, '햄과 소시지가 건강에 해롭다는 건 분명한 사실일 텐데 이제 어쩌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햄'소시지를 계속 먹어야 하나, 이제 끊어야 하나.
◆WHO의 발표는 사실에 근거, 하지만…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표한 이번 연구결과는 분명 근거가 있다. 10개국 22명의 전문가가 육류 섭취와 암의 상관관계에 대해 800여 건의 연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햄'소시지 등 가공육류와 붉은 고기 섭취가 직장암이나 대장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매일 50g의 가공육을 섭취하면, 직장암에 걸릴 확률이 18% 높아진다는 지적이다.
햄'소시지가 담배와 동급의 1급 발암물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급 발암물질로 심각하게 건강에 해를 끼치려면, 매일 50g 이상의 가공육을 먹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하루 평균 6g의 가공육을 섭취한다고 하니 가공육 중독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담배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2갑 이상 매일 피우는 사람과 하루에 서너 개비 피우는 사람이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국민은 들끓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몇몇 주부나 자취생들은 냉장고에서 햄(비엔나, 프랑크, 스팸류 등)과 소시지를 전부 꺼내서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견문발검(見蚊拔劒). 모기를 보고, 검을 꺼내는 과도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대구한의대 양백지간 푸드테라피 활성화사업단장 김미림 교수는 "햄'소시지 등 가공육은 발암물질이 다소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덜 섭취하면 좋다는 정도의 얘기로 받아들이면 된다"며 "음식에 대해 과도한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며, 자연 건강식을 즐기는 것은 이미 시대의 추세"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아질산나트륨과 인산염
햄'소시지 등 가공육에는 글루타민산'에리소르빈산 나트륨, 콜라겐케이싱, 소르빈산, 글리신 등 화학첨가물들이 많이 들어가지만, 이 중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물질은 아질산나트륨과 인산염이다. 아질산나트륨은 가공육류의 색깔을 더욱 붉게 만드는 일종의 발색제다. 이 물질은 모든 자연식품에는 쓰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다만, 햄'소시지 등 가공육류에만 사용 가능하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보기에 먹음직스럽도록 만들며, 색깔도 예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가공 햄'소시지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은 아질산나트륨을 사용하고 있다.
인산염은 햄'소시지를 쫀득쫀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자체 독성은 거의 없지만 과다 섭취 시 인체 내에서 칼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더 해로울 수 있다.
두 물질 이외에도 사실 더 위험한 것이 조리방법상에 도사리고 있다. 바로 숯불에 직화구이할 경우 햄과 소시지 등에 달라붙은 그을음(Soot, 유기물의 불완전연소 또는 열분해에 의해 생기는 흑색 무정형의 미소분말 물질)에 포함된 벤조피렌(Benzopyrene)이다. 이 발암물질은 인체에 축적될 경우 각종 암을 유발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환경호르몬이다. 이 벤조피렌은 200℃ 이상의 온도에서 구울 때 생성되기 때문에 미국 바비큐 대회 등에서도 오븐 온도를 180도가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대구 동성로 시내에서 수제 소시지 전문점 '비기트레인'을 운영하고 있는 박운석(53) 씨는 "WHO에서 햄'소시지를 화학첨가물 여부나 요리하는 방법 등을 고려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발암물질로 규정하는 바람에 오해와 혼란을 야기했다"며 "건강식을 지향하는 우리 수제 소시지의 경우 가공육류와 달리 아질산나트륨'인산염 등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뒤늦은 진화
햄'소시지가 안전한 먹거리냐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식약처는 5일 소비자의 건강한 식생활과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햄과 소시지 등 식육가공품을 제대로 알고 살 수 있도록 구체적 정보를 제공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공육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없다. 일반적으로 훈제, 염장 또는 질산염과 아질산염 같은 보존제를 첨가하는 등의 처리를 한 육류(주로 붉은 고기)를 의미할 뿐이다.
햄류는 대표적 식육가공품이다. 햄류는 세부적으로 '햄, 생햄, 프레스햄, 혼합프레스햄'으로 나뉜다.(표) 이 중에 햄과 생햄은 축산물의 가공기준 및 성분규격(식약처 고시)에 따라 고기 함량을 따로 정하고 있진 않으나, 통상 90% 이상의 식육을 함유하고 있다. 프레스햄은 제조 때 식육이 85% 이상, 전분은 5% 이하로 쓰이며, 고기에 다른 식품이나 식품첨가물을 첨가해 만든다. 혼합프레스햄은 제조 때 식육이 75% 이상, 전분은 8% 이하로 사용되며, 고기에 생선살 등을 혼합해 가공한다. 소시지는 제조 가공 때 식육은 70% 이상, 전분은 10% 이하로 사용된다. 식육을 잘게 갈아 다른 식품을 첨가하고서 훈연 가열 등의 가공과정을 거친다.
이와 함께 식약처는 햄과 소시지 등 가공육은 불로 직접 굽거나 기름에 튀기는 것보다는, 삶거나 쪄서 먹으면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등 유해물질이 적게 생성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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