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참여마당] 편지-수능고지 달리는 영호에게

영호, 힘들지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 할아버지가 영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구나. 마음속으로 건강과 행운을 빌 수 있는 길 한가지뿐.

우선 서울 상류대학 수시 모집 합격을 축하한다. 힘차게 박수를 한 번 칠란다. 수능을 잘 치르고 영호가 선호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박수 두 번 쳐서 축하하련다. 운동 경기도 내리 3번 승리하면 승자가 된 기쁨을 만끽하잖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이 때론 있을지라도 절대 좌절해서는 안 되지 않니.

할아버지는 구시대 사람, 남들보다 뒤처지는 사람, 1985년 1종 보통 운전면허증을 따고도 한 번도 운전을 못 해보고 휴대폰도 다룰 줄 모르고, 남들 다 하는 취미 고스톱도 못하고,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나는 주위분들께 나도 잘하는 것이 있노라고 큰소리친단다.

하루 밥 3끼 편식 없이 잘 먹고 건강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세상에 80 나이에도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돈은 많이 못 벌지만 하루하루를 긍지를 갖고 생활한다고, 궁색한 변명을 한단다.

할아버지는 11월 6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작년 서울서 잠시 영호를 만났던 그 산악회에서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를 다녀왔단다. 빗속을 이동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칩거했던 백담사도 갔다.

한때 사람들이 넘쳐날 정도로 유명한 사찰이었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붐비는구나. 7㎞ 거리 왕복 요금이 4천600원인데도 만원 버스가 연속적으로 달려오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여행의 기쁨 속에 호사를 누리는데, 이 순간에도 영호는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나 싶다. 기도하면 통하지 않나 해서 부처님께 수없이 절을 하고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정성이 하늘에 닿고 마음과 마음의 텔레파시가 영호에게도 전해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빗속에서도 단풍이 무척 아름답더구나. 나무도 왕성한 젊음의 푸르름이 세월에 떠밀려 몸은 쇠약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서서히 몸의 일부인 한 잎 두 잎 옷을 벗고 땅의 거름으로 이바지하겠지.

사랑하는 영호,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으로 평소 마음으로 차분하게 수능 잘 치르도록 대구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힘 모아 기도할게. 수능이 끝나도 머리가 복잡하고 기다림도 있고 마음을 비울 수 없지. 그때 보약은 잠시 번잡한 서울을 떠나 대구로 오렴. 물론 아버지 어머니와 수의하면서 말이다. 대구에 오면 영호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 뭐든지 사줄게. 구경할 곳도 많단다. 영호야 미안하다. 글이 너무 길구나. 몸 건강 안녕.

2015년 11월 9일 대구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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