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금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화제 속에 종영을 알렸다. 후반으로 가면서 20%(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광고 제외 기준)를 뛰어넘으며 비지상파 프로그램의 시청률 기록을 경신했고, 주인공 성덕선(혜리)의 남편 찾기 등 각종 스포일러가 온라인에 떠돌아 이목을 집중시켰다. 심지어 알 만한 매체 기자들이 업계의 '암묵적 약속'을 깨면서까지 대본의 흐름을 기사화해 뜨거운 취재 열기를 입증하기도 했다. 극 중 천재 바둑기사로 나오는 최택(박보검)으로 인해 바둑에 대한 관심까지 커졌다. 물론, 그 이면에는 더 많은 연령대의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욕먹기를 각오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도적인 허술함이 눈에 띄어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쨌든 한 편의 드라마가 이 정도로 숱한 이슈를 쏟아낸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비지상파 드라마 성공 기준 바꿔
'응답하라 1988'로 인해 tvN과 OCN 등 CJ E&M 계열 채널은 자사가 구축시킨 시즌제 드라마의 틀을 보다 공고히 다지며 '우리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리고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CJ 측은 '막돼먹은 영애씨'를 무려 15시즌까지 만들어내는 등 지상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즌제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냈는데, 막상 지상파에서는 이런 시도를 위협적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CJ 계열 채널의 드라마가 특정 연령대 또는 마니아 취향을 공략하던 장르적 성격이 강했던 사실을 꼬집으며 '정통 드라마 제작 방식에서 벗어난 유치한 전략' 정도로 치부했다. 사실 그동안 CJ 계열의 인기 드라마가 도달한 시청률의 한계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작인 '응답하라 1994'의 10% 초반대 수준. 그 외 비지상파에서 고공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라고 해봐야 스타작가 김수현이 가세해 10%를 넘긴 JTBC '무자식 상팔자' 정도가 전부다. 화제성이 높았다고 해도 지상파의 입장에선 자사 드라마의 평균 수준밖에 안 되는 비지상파 킬러 콘텐츠의 기록을 우습게 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에 이르러 상황은 달라졌다. 전체 회차의 절반에 이르기도 전인 8회에서 전작 '응답하라 1994'의 자체 최고 기록을 뛰어넘었으며 마지막 2회 분량은 20%대를 넘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의 '수도권 유료가구 광고 제외' 기준으로 19회와 20회가 각각 21%를, '유료 플랫폼 가구 전국기준'을 따져도 마지막회가 20%에 도달했다. 비지상파 드라마로선 처음으로 점령한 고지다. 지금은 절반으로 꺾였지만 한때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성공 기준이 20%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가히 놀라운 수치다. 비지상파 히트작의 화제성이 높아도 '수치' 핑계를 대며 외면하던 지상파다. 하지만, 더는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시청률이 뛰어올랐다는 사실은 그동안 지상파에 국한됐던 중년층 이상 연령대 시청자들이 유입됐다는 말과 같다. 실제로 '응답하라 1988'의 연령대별 시청자 중 40대가 평균적으로 20%대를 넘나들었다. 30대 역시 이 수치에 육박했다. 젊은 층에만 어필한 게 아니란 말이다.
이런 결과는 '응답하라 1988' 제작진이 내놓은 기막힌 전략의 승리다. 앞서 두 편의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 시대 대중문화와 젊은이들의 성장 및 사랑에 포인트를 맞춰 '새로운 스타일의 트렌디 드라마'라는 느낌을 줬다. 당대의 1020층을 감싸 안으며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연도에 청춘을 보냈던 30대까지 공략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은 더 나아가 주요 청춘 캐릭터의 부모 세대까지 에피소드의 중심에 내세우는 강수를 뒀다. 여자 주인공을 둘러싼 연적들의 갈등, 또 주변 캐릭터들 간의 러브스토리가 중심이 됐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시리즈는 '가족드라마'의 느낌이 강했다. 여기에 전작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던 여자 주인공의 남편 찾기 게임을 도입하고 '응답하라' 시리즈의 강점인 향수 자극 공격을 성공적으로 해내며 드라마를 화제작 반열에 올렸다. '시청률의 벽'을 뛰어넘고 시리즈의 브랜드를 굳히는 전략으로선 꽤나 훌륭했다.
말 그대로 당대 젊은이들이 향유했던 대중문화뿐 아니라 그 시절 기성세대의 이야기까지 끄집어낸 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번 시즌을 넘어 또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야기를 특정 공간에 한정시키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변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으로, 첫 시도에 다소 허점이 보였을 수는 있으나 다음번에 더 탄탄한 완성도의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작품성과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필자는 '응답하라 1988'의 상업적 전략을 높이 사는 편이다. 전작에 열광했던 팬층을 와해시킬 수도 있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제작진은 기존 팬을 지키고 또 다른 시청자층을 끌어들이며 시리즈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도 없지는 않았다. '완벽한 작품이 어디 있겠냐'고 말할 수 있고, 빠듯한 제작 과정의 어려움도 이해한다. 그러나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도 못내 아쉬운 점들이 있다.
실제 그 당시에 등장했던 CF 또는 가요와 팝송 등이 재미요소로 사용되기도 했고 극 중 배경이 되는 연도나 시간대와 부합하지 않는 사건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부분들은 스토리 전개상 필요해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단, 후반으로 가면서 흐지부지된 내러티브와 들쑥날쑥했던 일부 캐릭터의 성격 묘사 등에 대한 처리는 안타까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이 쏠렸던 덕선의 남편 찾기 게임의 결말을 보여주는 방식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종영을 하루 앞둔 15일, 19회 방송의 전반부에서 덕선과 택이 부부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 과정은 그동안 꾸준히 보여줬던 세 사람의 심적 갈등에 비해 단순하게 처리돼 의아함을 자아냈다. 오랜 친구 사이를 깨트리기 싫어 서로가 좋아하는 한 여자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택과 김정환(류준열).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역시 누구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던 덕선이다. 세 캐릭터의 심리를 틈날 때마다 조금씩 보여주는 듯싶더니 막상 애정게임의 결과를 밝힐 때에는 큰 고민 없이 키스 한 번, 그리고 택과 덕선의 지난 일들을 회상 형식으로 길게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날 제작진은 극 중 모든 캐릭터를 한자리에 모이게 해 억지 감동을 주고 그 자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상당히 긴 시간을 할애해 보여줬는데, 오히려 이 유치한 신(노년층 시청자들에게 통했을지는 모르지만)을 대폭 줄이고 진짜로 필요한 장면을 보여줬다면 택과 덕선이 연결되는 장면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게다. 불필요한 장면을 길게 보여주고 지난 방송분까지 편집해 가져다 붙인 건 시간에 쫓기다 어쩔 수 없이 택한 일인 게 분명하다.
16일 방송된 최종회 역시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이미 이야기는 끝났는데 러닝타임을 메우기 위해 지난 방송분을 편집해 붙여 넣기를 하는 등 시간 끌기를 해 빈축을 샀다. '보다 충실한 결말' 운운하면서 한 주 방송을 쉬기도 하더니 그 결과가 썩 내키진 않는다.
다만, 이런 실수가 있었는데도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향수를 자극하는 날카로운 제작진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쌍문동 식구들이 하나둘씩 동네를 떠나갈 때, 그리고 과거 회상 신에서 덕선을 포함한 다섯 친구들이 모여 '영웅본색2'를 보고 있는 장면에서, 또 동물원의 '혜화동'이 흐르는 신에서 필자도 코끝이 찡해 눈물을 훔쳤다. 추억을 소재로 삼은 콘텐츠는 많지만 자신들의 실수까지 덮어버릴 정도로 적시적소에 이 무기를 활용할 줄 아는 이는 드물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용서받을 수 있는 이유다. 다음 시즌에는 좀 더 탄탄한 기획과 완성도를 보여주길 바라며 석 달여 기간 동안 즐거웠던 '쌍팔년도'의 추억을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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