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 소개는 따로 할 필요가 없겠지요? 초베스트셀러 작가이니까요. 언젠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잘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이 다른 세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이라는 답변을 봤습니다. 다른 이들과는 제법 다른 삶의 질곡이 지금의 공지영을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성이 같은 세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이라고 답변했다면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특별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그녀도 부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공지영이 왜 좋으냐고 물으니 첫마디가 '예쁘잖아'라고 했습니다. 사실 얼굴보다는 문장 하나하나가 더 아름답습니다. 그녀가 만드는 문장의 향연에 자주 이끌렸습니다. 소설이라는 양식을 사용하는 작가라면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자꾸만 오지랖이 넓어지고 있는 그녀의 글쓰기가 불편합니다. 내 속에 남은 지난 시간의 기억처럼 그렇게 그 모습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것, 책상 서랍에 몇 장만 남아있는 흑백사진처럼 그렇게 추억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것, 그런 마음이 내 작은 바람입니다.
1999년이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을 만났던 때가. 학교 도서관 귀퉁이에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라는 이상한 제목의 이성복 시집을 늦게 만난 것도 바로 그해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기억들도 더 깊은 자리로 가라앉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인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기억을 반추할 시간이 적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책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다시 들었습니다. 잊혀가던 글자와 문장들이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나를 맞이했습니다. 변해가는 그녀와는 달리 소설 속의 글자와 문장들은 여전히 거기에서 반갑게 나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책은 위대합니다. 늘 거기에 있으니까요.
'길'은 작품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에 실린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30년 만에 아내와 함께 떠난 여행 이야기. 서로의 일상에 바빠 서로를 돌보지 못하고 앙금만 남은 채 시작된 여행. 그 전에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도 있었습니다. 노년의 남자치고는 대단히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주인공의 쓸쓸하고도 절실한 독백을 통해 서로 다른 삶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길'을 제시합니다. 서울에서 고창 선운사, 해남 월출산, 완도, 보길도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두 사람, 더불어 죽은 아들과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위의 인용문은 주인공이 아들을 잃고 난 다음, 죽은 아들에게 자주 중얼거렸던 말입니다. 늘 어머니의 편이었던 아들. 일에만 바빴던 남편보다는 아들이 아내에게는 전부였을 겁니다. 주인공은 늘 아들과 다투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아들이 자신의 일과 마음을 이해해 줄 시간이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아들이 죽고 난 다음부터 아내에게만이 아니라 주인공에게도 이미 시간은 정지되었습니다. 끝내 타협하지 못하고 떠난 아들에게 주인공은 늘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엄정한 타동사라고. 변혁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거라고. 그러니 제발 성급하지 말라고. 하지만 자신이 젊었을 때에도 누군가가 그에게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란 원래 자신이 존재하는 그 현재의 시간 속에서만 살아가니까요. 10대에는 10대의 삶이, 20대에도, 30대에도, 40대에도, 50대에도 그 시간의 삶이 존재합니다. 아들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음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결국 둘은 만나지 못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사람은 주인공이었던 것이지요. 아들이 살았던 삶을 이미 살아봤으니까요. 소통하지 못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의 여행은 막바지로 흐릅니다.
(다음 주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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