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돈을 번다"고 흔히 말한다. 부자는 조금만 일해도 돈을 많이 벌고, 가난한 사람은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벗기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 한창인 '흙수저'금수저' 타령도 비슷한 맥락이다. 부자는 계속 부를 이어가고, 가난한 사람은 대(代)를 이어 가난하다는 말이 젊은이들을 절망에 빠지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이런 말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부자들이 돈을 늘 잘 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성공한 부자'들의 통계만 더하기 때문이다. 선대가 물려준 재산으로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맨손으로 출발해 성공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한국에서 창업 후 5년 뒤까지 살아남는 사업자는 30.9%에 불과하다. 사업 경과와 실적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거친 뒤에야 증권거래소에 상장되는 상장법인도 매년 8개 정도가 폐업한다. 상장 후 상장 폐지된 기업이 전체 상장기업의 40%에 이른다. 그만큼 자본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은 어렵다.
글쓰기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는 게 있다. 문장을 꾸미는 데 4단계의 과정이 있는데, 어떤 영감을 받아 문제를 제기하고(기), 일정한 분량의 내용을 전개한(승) 뒤, 전환(전)을 이루고 결말(결)에 이르는 형식을 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승'(承), 즉 문장의 전개다. 일단 일을 시작했으면 일정기간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곧 질적 전환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시작한 뒤 상당한 정도의 양적 팽창이 이루어진 뒤에야 질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사람살이에도 '기승전결'은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디어가 있다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혹은 공부를 시작했다고 곧바로 성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충분한 양적 팽창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질적 변화가 발생한다.
지식의 축적, 자본의 축적, 기술의 축적 과정을 배제하고 곧바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조바심에서 비롯된 욕심일 뿐이다. 아버지가 가난하면 자식은 가난하게 출발할 수밖에 없음을, 양적 축적의 과정이 더 길 수밖에 없음을 긍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을 부정하고 건너뛰자면 좌절과 맞닥뜨릴 뿐이다.
러시아 인구(1억4천200만 명)는 한국의 3배에 이르지만 국내총생산(2015년 기준 1조1천760억달러)은 우리나라(1조4천351억달러)보다 3천억달러가량 적다. 같은 시간을 노동해도 한국 사람의 생산량이 러시아 사람들보다 많고, 임금도 높다. 개인이 가진 가치 자본과 국가가 가진 자본 축적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만약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인을 '금수저를 물고 난 국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동의할 수 있을까? 러시아는 과거 300년 동안 우리나라보다 훨씬 부강한 나라였다. 필요한 것은 흙수저, 금수저 타령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적 가치를 키우고, 자본의 규모를 늘려가려는 노력이다.
청년이 흙수저 타령을 늘어놓으며 절망에 빠지는 것은 미래의 자신을 '타자'로 취급하는 짓이다. 현실은 분명히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격려하고, 각오를 다지고, 분연히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것이 한국의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이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을 걷는 청년들을 응원하며 시원한 물 한 잔 건네는 것, 그것이 한국의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차두리는 축구계에서 대표적 금수저로 통한다. 이에 대해 그의 아버지 차범근 씨는 "그럼 나는 흙수저네, 지독하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거든"이라고 말한다. 흙수저였던 차범근 씨는 달리고 또 달렸던 덕분에 자식에게 금수저를 물려줄 수 있었다. 만약 차두리가 아버지의 금수저만 믿고 달리기를 거부한다면 자신의 아들에게 어떤 수저를 물려주게 될까? 빈부는 고착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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