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대구 중구 달성공원 동물원 늑대사. 동물원 안에서도 가장 열악한 시설로 악명 높은 곳이다. 불과 10㎡ 남짓한 공간에 팀버늑대와 몽골늑대, 여우, 아프리카포큐파인, 너구리, 서발, 삵, 코요테, 망토개코원숭이가 철망을 사이에 두고 부대끼며 지내고 있다. 따뜻한 봄이 오고 있지만 동물들의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이사 얘기가 나온 지 벌써 3년째. 올해도 이사는 기약이 없다.
코요테가 비어 있는 삵의 방을 쳐다보며 입을 뗐다. "지난해 겨울 사육장 철망에 다리가 끼여 다친 삵은 치료가 잘 됐나 모르겠어. 철망의 날카로운 부분에 다쳤다고 하던데. 수술까지 하고 안 돌아오는 걸 보면 아직 회복 중인가 봐."
삵의 방에는 '치료 중'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었다. "삵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라고. 종 보존은 힘들어도 다치지는 말아야 하는데…." 코요테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팀버늑대가 거들고 나섰다. "늑대가 얼마나 활동성이 강한지 알면서 다 자란 늑대 두 마리를 좁은 방에 가둬두면 어떡해. 그러니까 미치기 일보 직전이고, 정신을 놓고 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거잖아. 대전 오월드의 늑대 사파리는 산에다 늑대들을 풀어놓고 자유롭게 뛸 수 있게 해놨다는데, 하루라도 그렇게 살아봤으면 여한이 없겠어."
원숭이사의 일본원숭이가 잘난 체하며 나섰다. "작년에 공원 예산 21억8천500만원 중에 동물과 동물사를 유지하는 데 쓴 돈은 2억3천600만원이 전부래. 고작 10%를 겨우 넘은 거지. 우리가 다쳐도 문제야. 동물원에 수의사가 3명밖에 없어. 여기에 사는 동물이 700마리나 되는데 말야. 외국처럼 동물별로 전담 수의사는 못 두더라도 기본적인 관리는 되어야 할 것 아냐. 기껏 돌봐주는 것이라곤 예방접종이나 다친 다음에 고쳐 주는 것뿐이지."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지자 터줏대감인 코끼리 복동이(46'수컷)가 상황을 정리했다. "달성토성이 문화재라서 동물원 시설을 늘리거나 고치지 못한다는 건 이해해. 하지만 우리에게도 동물 성격을 배려한 공간이 필요해. 콘크리트 바닥에 좁은 공간, 하루종일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는 시설은 정말 열악하기 짝이 없지.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우리를 보러 오는데 다들 혀를 끌끌 차잖아. 이사 얘기가 나온 지 벌써 15년인데, 아직까지 동물원 이전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냐는 거지."
복동이의 말에 동물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동물원 이전'을 결정할 대구시가 하루빨리 결론을 내려주길 바랄 뿐이었다.
*이 기사는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동물들의 입장에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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