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검사 의무화의 그늘

소단지 아파트 유지비용 부담, 놀이터 없애고 어른들 쉼터로

25일 대구 북구 매천동의 한 놀이터에 시설물 안전기준 미달로 인해 놀이시설 이용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25일 대구 북구 매천동의 한 놀이터에 시설물 안전기준 미달로 인해 놀이시설 이용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24일 오후 2시 대구 북구 산격동 한 아파트. 90여 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없다. 2014년까지만 해도 놀이터가 있었지만, 주민 동의를 받아 폐쇄한 뒤 그 자리에 주민 쉼터로 이용되는 컨테이너를 놓아뒀다. 이 아파트 경비원은 "놀이터 유지'보수가 어려운 데다 주민들 대다수가 어르신들이라 놀이터보다는 쉼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놀이터가 사라지고 있다. 안전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노후화된 놀이터들이 폐쇄되고, 남아있는 놀이터들도 아이들의 놀이 공간보다 노인들의 휴식 공간이 돼가고 있다.

2015년 말 기준 대구시 어린이 놀이시설은 주택단지 1천588개, 도시공원 417개, 어린이집 391개 등 총 2천518개다.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지난해 1월까지 놀이터의 설치안전검사가 의무화되면서, 북구 10곳, 달서구 4곳, 동구 4곳 등 총 22곳의 놀이터가 문을 닫았다. 또 아직 안전검사를 이행하지 못한 10곳은 사용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놀이터를 폐쇄한 곳들은 비용 부담을 원인으로 꼽는다. 대구시 안전관리과 관계자는 "어린이 놀이시설을 새로 설치하려면 적게는 1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비용이 든다. 일단 안전검사를 통과해도 2년마다 안전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시소나 그네 등 시설 하나당 4만~8만원에 이르는 안전검사 비용도 소규모 주택단지 주민에게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놀이터가 있지만 어린이를 위한 놀이 공간 기능을 상실한 곳들도 많다.

25일 오후 찾은 북구 매천동의 한 놀이터에선 어르신 5, 6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놀이터 옆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황모(48) 씨는 "놀이터에서 아이들 모습을 본 지가 오래됐다. 사실상 놀이터라기보다 주민 휴식공간으로 보는 게 맞다"고 했다. 해당 놀이터는 안전검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임시 사용 중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북구청 관계자는 "만약 이용하는 어린이들이 있었다면 개'보수를 요구하는 민원이 들어왔을 텐데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어린이 놀이시설 폐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원은 "어린이 놀이시설을 폐쇄한 곳은 안전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보수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서민 아파트가 많은 실정이다. 이들에게 놀이터를 되돌려주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안전검사 기준 의무화 후 폐쇄된 어린이 놀이시설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주변에 공원 등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어린이 놀이시설을 설치하는 등 다음 달 중으로 대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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