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통증 없는 노년

얼마 전 60대 여성 환자가 손목 통증을 호소하며 진료실을 찾았다. 손목이 부어 구부리기 힘들어했고, 힘이 없어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손주를 돌보며 갑자기 힘을 주는 일이 반복됐던 것이 원인이었다. 또 다른 노인 환자도 비슷한 이유로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가급적 아이를 돌보지 말라"고 권유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을 들을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맞벌이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주들을 돌보다 통증클리닉을 찾는 노인 환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66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3.1%를 차지했다. UN이 정한 고령사회의 기준인 14%에 근접했다. 오는 2030년이 되면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노인들의 삶의 질과 관련해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연령이 증가할수록 삶의 질 총점이 낮게 나왔다. 노인들은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 기능의 상실로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고 있으며 심리적'경제적 어려움과 질병으로 인해 활동능력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삶의 질을 낮추는 여러 원인 중에서 노인 통증도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인 통증의 80%는 골관절염이나 다발성 근육통, 류마티스관절염 등 근골격계 통증이 대부분이다. 그 밖에 흔한 만성 통증으로는 대상포진, 암 통증, 섬유근육통, 뇌졸중 후 통증, 당뇨병성 신경병증 등이 있다.

전 세계 고령자의 50% 이상이 만성 통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사회적 인식과 관심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노인 통증이 만성 통증으로 진행되면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삶의 질 저하와 치료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크게 늘게 된다.

대한통증연구학회에서 발표한 '노인 통증 인식 및 관리지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안에는 '노인이 직면하고 있는 통증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노인 환자의 경우, 통증 진단과 관리가 더 어려워 특별한 기술과 지식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노인 환자의 통증을 최적으로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연구를 기울여야 한다' '극심한 만성 통증의 치료를 위한 전문의와 병원, 약물 등 치료 방안을 적극 활용하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혼신의 힘을 다한 노인들에게 이제 국가가 나서 그들의 고충을 들어줘야 할 때다. 정부나 전문가 집단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의료계에서도 통증의학과 노인 통증에 관련하여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족 및 지역사회, 기관의 지원과 일상수행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보건복지 프로그램의 개발과 적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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