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4등

1등만 하면 아이가 멍들어도 괜찮나요?

메달 근처에서만 맴도는, 수영이 진짜로 좋아서 하는 소년의 이야기는 희망과 아픔이라는 두 단어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1등만 기억하는 잔인한 세상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1등을 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어린 수영선수 준호의 일화는 우리 모두가 징글징글하게 겪고 있는 정글 같은 경쟁사회의 대표적인 한 단면이다. 영화는 매우 보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대회만 나갔다 하면 4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12세 수영선수 준호(유재상)는 1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이항나)의 닦달에 새로운 수영 코치 광수(박해준)를 만난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회 1등은 물론, 대학까지 골라 가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 광수는 엄마에게 연습 기간 동안 수영장 출입금지 명령을 내린다. 대회를 코앞에 두고도 연습은커녕 PC방 마우스나 소주잔을 손에 쥔 미덥지 못한 광수이지만, 이래 봬도 16년 전 아시아 신기록까지 달성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의심 반, 기대 반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수영 대회에 출전한 준호의 기록은 거의 1등인 2등이고 준호네 집은 웃음꽃이 핀다. 하지만 동생 기호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는 반전된다. "정말 맞고 하니까 잘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형?"

국가인권위원회의 열두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해피엔드'(1999)와 '은교'(2012)의 정지우 감독 작품이다.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질투를 섬세한 영화 언어로 포착하는 품격 높은 로맨스 영화를 만들어왔던 정지우 감독이 이번에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수영을 몹시도 좋아하는 꼬마 수영선수가 닦달하는 엄마와 엄하게 훈육하는 코치 사이에서 큰일을 겪으며 좌절을 경험하다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폭력'이다. 아이를 때리는 코치 광수에게는 자신이 그렇게 된 과거 사연이 있다. 영화는 16년 전 젊은 광수로부터 시작한다. 게으르고 오만한 천재적인 수영선수였던 광수는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선수촌 무단이탈을 이유로 체벌을 당하고, 이에 반발해 그 길로 수영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이제 코치가 되어 준호 앞에 선 광수는 준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크게 키워보고 싶어 한다. 그런 광수의 생각을 단단하게 붙들어 매는 것은 단 하나, 수영에 집중하도록 매를 드는 스승이 진정한 스승이라는 것이다. 준호가 미워서 때리는 게 아니라 '너를 위해서' 매를 든다는 게 광수의 생각이다. 수영으로 금메달을 따고 대학에 보내려던 꿈을 가진 엄마는 아이가 매를 맞더라도 성적이 쑥쑥 올라가자 침묵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체벌의 대물림 문제도 심각하다. 준호는 동생에게 매를 들기 시작한다.

영화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경쟁 사회에서 아이를 위해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더 잘하기 위해 잘못된 것에 눈 감을 것인가. 자율교육과 훈육교육의 균형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한 사람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사회 공동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성취감을 위해 즐거움을 희생해야 하는가. 이 많은 심각한 질문거리들이 영화 전개 내내 던져진다. 그렇지만 영화가 무겁고 심각하지만은 않다. 유머가 적재적소에 잘 들어가 있고, 캐릭터들이 무심코 내뱉는 대사는 폐부를 찌른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화면이 영화의 장점이다. 진정으로 수영을 좋아하는 준호는 물 아래 비쳐지는 태양빛을 잡으러 유영하거나, 창가를 통해 화분에 내리꽂히는 빛을 소재로 시를 쓴다. 아이의 빛나는 감수성은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마음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강하고 찬란한 자아는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해답을 찾아나가게 할 것이다. 몸도 마음도 성장하는 아이를 어른은 지켜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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