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시 4월, 세월호를 기억하다

9일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9일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세월호 2주기 대구시민문화제'에서 시민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갑자기 좌현이 기울어 침수가 발생했다. 배가 15도 정도 기운 상태로 정지한 위험한 상황."

세월호 '급변침'이 최초 보고된 시간은 오전 8시 50분. 독자들이 막 신문을 집어든 지금쯤일 것이다. 그때 우린 같은 시간 가족과 먹는 조반이 부끄러웠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에 나서야 하는 발걸음이 죄스러웠다.

세월호가 어느덧 두 번째 봄을 맞았다. 대한민국을 온통 침울한 '레퀴엠'으로 몰아넣었던 그날. 이 땅에선 벌써 벚꽃이 두 번 피고 졌다. '꽃'이고자 했던 아이들은 '별'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다시 전국엔 애도의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다. 이번 주 주말 판에서는 '다시 4월, 세월호를 기억하다'를 기획했다. 노란 리본을 따라 700여일 전 우울한 진혼곡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별이 된 아이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안전한가요?"

#퇴색해가는 노란 리본

아이들이 떠난 지 700여 일.

일상에 바쁘다는 핑계로 사회의 불행에 무뎌진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추모의 끝은 무한(無限)인데 미리 기간을 정해 놓은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우린 지금도 곳곳에서 '세월호'를 만난다. 차량 뒷좌석의 해진 스티커로 만나고, 컴퓨터 바탕화면의 노란 리본으로 만난다. 지하철에서 노랑 가방이나 리본을 볼 때면 그들의 높은 책무의식 앞에 괜히 죄스러워진다.

타인의 불행에 벌써 둔감해진 자신이 싫고, 이웃의 슬픔에 이렇게 쉽게 관심을 놓아버린 우리가 밉다. 탤런트 박신혜가 세월호 1주기 때 올렸다는 추모글이 떠오른다. '꽃처럼 예쁜 아이들이 꽃같이 한창 예쁜 나이에 꽃잎처럼 날아갔다. 손에서 놓으면 잊어버린다. 생각에서 잊으면 잊어버린다.'

'잊으려고 하는 자들, 이들 역시 공범이다'는 격언이 마음 한구석을 찌른다.

#팽목항 분향소의 과자들

엊그제 가족과 함께 TV를 보다가 한 장면에 이르러 우리 가족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단출한 저녁 시간 우리 부부를 우울로 몰아넣은 것은 팽목항 분향소에 놓인 수많은 과자들이었다. 크래커, 초콜릿, 바나나, 음료수….

과자들은 제상의 어떤 제물보다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아 갔다. 추모가 고도의 정신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거창한 의식 같지만, 사실 가장 절실한 애도는 '생물학적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매일 아침 엄마는 습관처럼 조반을 준비하러 나간다. 차가운 바닷속을 떠돌고 있을 아이 생각에 방의 보일러는 언제나 'OFF'인 상태고, 아이와 자주 갔던 돈가스집 간판엔 차마 눈길을 주지 못한다.

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인 과자 중 단 한 조각도 아이 입에 들어갈 수 없다는 현실적 좌절감에 가슴은 미어지지만, 이 공허한 의식이라도 치르지 않으면 엄마는 어떻게 영정 속 아이와 눈을 맞추겠는가.

한 추모시처럼 엄마의 슬픔은 바닷속 아이들에게 한 방울 공기도 될 수 없지만, 엄마에게 이 슬픈 기도만큼 절실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신조차도 포기한 그 단어

신은 인간이 가족을 잃은 슬픔을 위로하려 여러 단어를 만들었다. 부인 잃은 남편을 홀아비, 부모를 잃으면 '외로운 아이'(고아), 남편을 잃은 부인을 '짝 없는 지어미'(과부)….

그러나 자식을 잃은 어미에 대한 표현은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신조차도 그 단어를 만들지 못했다. 다시금 벚꽃 그늘 아래서 꽃잎처럼 날려간 그 아이들이 떠오른다. 녹슨 철망 위 탈색한 리본처럼 우리의 망각이 두렵고 죄스럽다.

별이 된 아이들이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엄마, 지금은 안전한가요?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세월호 2주기 지역 추모행사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대구경북에서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 먼저 참사 700일이 되던 지난 3월 15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는 세월호대구대책위가 주최한 '세월호 대구시민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 김선우 공동상황실장은 "정부와 국회가 세월호를 외면하고 있다"며 "특별법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행령으로 국회는 내규를 핑계로 진실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민문화제가 열린 9일 대백 앞엔 시민단체, 학생, 시민 1천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행사에 참가한 한 고교생은 "단원고 형들의 비극을 애써 외면한 채 철없이 뛰어놀기만 하던 자신이 부끄럽다"며 "비극적 사고로 인생의 꽃을 접어버린 선배님들을 진심으로 애도한다"고 울먹였다. 천주교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등 종교단체들도 각각 추모 행사를 가졌다. 대구경북세월호대책위, 시민단체들은 각 지역별로 추모 행사를 가진 후 14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범국민추모문화제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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