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념보다 권력 의존…친박 해체는 시간 문제

원유철 비대위원장 내세워 당권 잡으려다 친박 내부서도 '자성론' 나와

여당의 참패로 마무리된 4'13 총선 후 새누리당 내 친박계(박근혜 대통령 지지 세력)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

이를 두고 '잔존 후 점진적 해체', '몰락', '해산'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19일 친박계인 원유철 원내대표는 조속한 시일 내 새로운 원내대표를 선출해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총선 패배에 따른 책임은 회피한 채 얼렁뚱땅 당권을 거머쥐려다 비박계의 거센 반격에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다. 새누리당 안팎에선 이번 백기 투항이 친박계 몰락의 서막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여당의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친박계 핵심으로 평가받아 온 인사들까지 이른바 '배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선 친박계의 퇴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친위조직의 흥망성쇠는 마감시간을 정해 놓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친박계가 특정 이념을 중심으로 뭉쳐진 신념형 조직이 아니라 권력자에 기대는 '양지 지향형' 인사들로 구성됐다는 분석도 그 이유다.

설상가상,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인 이번 총선 패배로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 앞당겨지면서 친박계는 기로에 섰다.

◆단임제 대통령 친위부대의 숙명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이학재 의원은 19일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 총회와 당선자 총회에서 선출되는 차기 원내대표가 당의 위기를 수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박계인 이 의원이 원 원내대표가 아닌 차기 원내지도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의원은 앞선 17일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최단기간 내 선출되는 새로운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비대위를 구성하고 당의 정비와 쇄신을 추진해야 한다"며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지고 물러난 지도부는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추천할 명분도 권한도 없다"고 주장했다. '친정'인 친박계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의 선택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를 끝으로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지만 측근들은 계속 정치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살길을 찾아야 했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배신'이지만 이 의원 입장에선 '최선의 길'을 찾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의 '입' 역할을 맡아왔던 이정현 의원도 친박계 비대위가 아닌 외부인사 수혈 방식에 의한 당 쇄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이날 라디오방송을 통해 "낡은 방식과 인식 속에 갇혀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았다면 일시적으로 문을 열고 새롭게 변해가려는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흔들리는 친박계, 구심점 없이 비틀

친박계를 뒤흔들고 있는 다양한 원심력에 대항할 수 있는 구심점이 없다는 점도 친박계 와해를 부채질할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친박계가 여당 내 여타 계파와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념적 지향이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른바 자칭 친박 또는 진박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정치인들의 두드러진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친박'이고 그들 가운데 대통령을 더 자주 만나는 사람이 '진박'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냐?"며 "진박이 추구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에 대한 그림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친박계가 어떠한 신념도 공유하지 않은 채 권력만 좇는 '양지 지향형' 인사들의 모임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 과정에서 친박계 인사 가운데 어느 누가 '이러다 새누리당은 물론 여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직언을 한 사람이 있느냐"며 "김무성 대표의 버티기 이후 친박계와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을 뒤집기 위해 나선 친박계 정치인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 호된 심판 앞에 친박계라는 간판을 내걸고 수습에 나서겠다는 이른바 '순장조'도 없다"며 "장수를 잃은 오합지졸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고정 지지층 발판으로 뒤집기 나서나

하지만 준치는 썩어도 준치고, 이빨이 상한 호랑이도 호랑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원내외 정치인들이 원하는 자리인 장관 및 정부기관장 임명권이 있다. 박 대통령이 가진 당근이다. 또 선거법 위반 수사를 주도하는 검찰도 현직 대통령을 무시할 수 없다. 대구에서는 균열이 생겼지만 여전히 경북에서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공고하다. 따라서 대구경북 정치인들에게만큼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박 대통령이 가진 정치적 자산은 충무공이 가졌던 배 12척보다 풍부하다"며 "특유의 위기 돌파력으로 정국을 뒤집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주변에서 박 대통령에게 어느 만큼 힘을 보태느냐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선 친박계의 노골적인 이탈 및 비박계의 파상 공세는 적어도 10월 이후에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법 공소시효가 10월 중순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6월 전당대회에서 친박계가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정국 변동의 폭이 달라질 것"이라며 "10월 이후에는 누가 당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본격적인 레임덕에 돌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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