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원책의 새論새評] 목 놓아 울고 싶다

전원책 칼럼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선거 희화화·오만함이 불러온 여당 참패

당 위기 때 앞장서는 진정한 리더 안 보여

태연한 대통령 국회에 대한 불만 토로만

3년간 버티던 보수층 정치적 등대 잃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양당체제로는 되는 것이 없어 3당 체제라는 변화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패배를 남 일처럼 말한 것이다. "대통령제라지만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면서 국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였다. 말은 그랬지만 박 대통령에게도 여당의 참패가 그저 여의도 정치판의 사건만은 아닐 터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여소야대를 뚫고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을 비책(秘策)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민심 수습을 위한 개각도, 1당 복귀를 위한 탈당파 복당도 단호히 부인했던 것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놀라운 참패였다. 여당 대권 주자들은 하나같이 재기 불능의 중상을 입었다. 실정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불만이 턱밑까지 차올랐는데도 귀신에 씌었는지 당 대표부터 국회선진화법을 무너뜨릴 180석을 얻겠다는 둥 방정을 떨던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친박 좌장은 '진박 마케팅'을 벌였고, 완장을 찬 공천관리위원장은 허망한 칼춤을 추면서 입맛대로 후보들을 내세웠다. 설상가상으로 '실세'는 취중 막말로 'X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패배를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선거 직전에는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면서도 일여다야(一與多野)를 믿었다. 엉터리 여론조사가 낙관을 부채질했다. 그런 낙관이 옥새 파동이라는 오만을 불렀을 때, 여당은 골리앗처럼 두 야당은 다윗처럼 보였다. 이러고도 선거에 지지 않는다면 그건 기적이다.

박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친박은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 후보들이 마케팅 수단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말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전단(專斷)하던 완장들을 몰랐을까? 커튼 뒤에서 살생부를 든 '내시'들이 설쳐대는 걸 몰랐을까? 그건 입법부를 자의적(恣意的)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방자함이었다. 세상이 모두 아는 걸 박 대통령이 몰랐다면 박 대통령은 '벌거숭이 임금님'이란 말인가? 기가 막히는 건 새누리당 역시 전부 '벌거숭이'였다는 것이다. 홍보팀마저 '무성이 옥새를 들고 나르샤' 같은 패러디를 통해 당을 희화(戱畵)화했다. 그것은 선거의 희화화였다. 그러니 망하는 건 당연했다.

여당은 선거가 끝나고도 지리멸렬을 계속했다. 완장 중 하나였던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이 되겠다고 간을 보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는 희극이 계속됐다. 당이 수렁에 빠지자 책상물림들의 허약함이 드러났다. 당선자 워크숍에서 일제히 고개를 숙였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건 쇼였다. 위기 때 앞장서는 진정한 '리더'는 없었다. 이미 박 대통령은 모든 원망(怨望)의 대상인데도 그들만은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박 대통령을 여전히 콘크리트 지지를 받고 있는 선거의 여왕으로 믿는 것인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권토중래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지 너무도 태연했다.

문제는 분하고 분한 이 나라 보수층이다. 저들만 망하면 좋겠는데 그 당이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믿었던 이 나라 보수도 함께 망했기 때문이다. 사실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이 아니었다. '보수를 혁신하겠다'고 설쳐댔지만 강령은 마치 후안 페론의 정의당 같았다.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때로는 잡탕 정당처럼 보였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름과 색깔을 바꾸면서 정명(正名)을 찾기는커녕 보수 본색(本色)을 스스로 버렸다. 그때도 완장들이 설쳐댔다. 그들이 경제민주화를 외치면서 붉은 '변기뚜껑'으로 회자된 로고를 선보였을 때 나는 그 당이 사당(私黨)이라고 확신했다. 솔직히 그때부터 새누리당은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었다. 그래도 미련은 남았었다.

나와 같은 대다수 보수층은 정치적 등대를 이제 잃었다. 지난 3년 동안 근근이 버티던 집토끼들은 이제 새누리당이 자신들이 정붙일 곳이 아닌 걸 알아챘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에도 떠나지 않던 집토끼들이었다. 견디기 어려운 불황도 그저 운이려니 여기면서 묵묵히 박 대통령을 후원하던 지지자였다. 중국에 치이고 미국에 주눅 들고 일본에게 비굴한데도 외교만은 잘한다고 애써 감싸던 이들이었다. 그런 보수층이 이제 새누리당과 정책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야당에 몰려갔다. 차라리 저쪽 애들은 '새 정치'라도 한다니 온실 속 해바라기 화초보다 낫지 않겠느냐며 갔다. 나는 이 비극적 현장을 지켜보면서 목 놓아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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