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인 할머니의 '즐거운 우리집'…학대 아동 보육 그룹홈 운영

교사 3명과 5명 아이들 돌봐, 대부분 아동학대 시달린 아픔 "웃음 잃은 아이들 잘 자라길"

4일 대구 서구 평리동 공동생활가정
4일 대구 서구 평리동 공동생활가정 '즐거운 우리집'에서 일본인 오카다 세츠코(오른쪽에서 두 번째) 씨와 박천만 계명대 교수가 아이들 공부를 봐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4일 오후 5시 대구 서구 평리동에 위치한 3층 주택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거실에 들어서자 키가 150㎝를 간신히 넘는 할머니가 웃고 있는 한 아이를 업고 있었다. 취재진과 눈이 마주친 아이는 할머니 등에서 내려와 "여기는 내 방!" "저기는 언니 방!"이라며 집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이 집의 가장은 일본 출신의 오카다 세츠코(76·여) 씨. 그는 2013년 9월 서구 평리동 3층 주택을 구입해 박천만(58) 계명대 공중보건학과 교수와 학대 아동 보육 시설인 그룹 홈 '즐거운 우리집'을 운영 중이다.

오카다 씨는 교사 3명과 함께 5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아이 대부분이 아동 학대에 시달린 아픔을 갖고 있으며 가정으로 돌아갈 형편도 되지 않는 상태다. 그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웃음이 없지만 조금만 함께 있으면 미소를 되찾는다"며 "아이들이 그저 밝고 예쁘게 자라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오카다 씨와 한국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쿄 도청 복지센터에서 1970년부터 27년 동안 근무했던 그는 유학생들 사이에서 '대모'로 통했다. 도청을 방문한 한국 유학생들을 안내하다 형편이 어려운 유학생들을 하나하나 챙기며 한국에 대한 사랑이 시작됐다.

이후 일본에서 만난 박 교수 소개로 1999년 계명대에서 보건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2003년 일본으로 돌아가 시즈오카 현립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하지만 '한국 사랑'은 계속 이어졌고 2006년 정년퇴직 후 봉사를 위해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오카다 씨는 "박사 과정을 하면서 불우한 아동들을 접하게 됐고 언젠가 이 친구들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박 교수와 고민 끝에 그룹 홈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서구청에서 일부 재정 지원을 받고 있으며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전해 들은 후원자 40명이 그룹 홈을 돕고 있다. 오카다 씨는 "소외 아동에 대해 국가나 사회에서 금전적 지원을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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