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라는 여인이 코살라국의 사위(舍衛)에 살고 있었습니다. 몹시 가난한 살림 때문에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온다는 소식이 곳곳에 전해져 가난한 여인의 난타도 듣게 되었지요.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과 성 안의 모든 백성은 석가모니 부처님께 등불 공양을 올리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난타였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존귀한 분을 위해 자신도 등불 공양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난타는 하루 종일 구걸을 했으나 돈 두 닢밖에 되지 않았지요. 기름집으로 달려간 난타는 하루 종일 구걸한 두 닢을 주인에게 건네며 "가난하지만 자신도 부처님을 위해 등불 공양을 올리고 싶다"고 사정했습니다. 난타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한 기름집 주인은 두 닢에 두 배가 되는 기름을 주었다고 합니다. 난타는 기쁜 마음으로 정성스레 등불을 밝혀 석가모니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밤이 깊어 가고, 세찬 바람으로 인하여 다른 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난타의 등불만은 꺼지지 않고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잠을 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10대 제자인 아난이 가사 자락으로 난타의 등을 끄려 하였으나 아무리 애를 써서 끄려도 해도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때 석가모니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 등불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한 여인의 정성과 넓고 큰 서원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등불의 공덕으로 이 여인은 앞으로 30겁 뒤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수미등광여래'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빈자일등 현우경 빈녀난타품에서)
연등은 '등불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등불을 밝힘으로써 무명의 어리석음을 깨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등 공양은 인도 전래의 풍습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 재세 시부터 시행되었고요.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앞서 소개한 난타라는 여인의 '빈자일등'이라고 합니다. 그 후에도 인도와 서역을 중심으로 부처님오신날 연등행렬을 봉행하였고, 이후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의 관등놀이 제등행렬처럼 불상을 수레에 실어 앞장서고 다채로운 가장행렬들이 뒤따르는 가두행렬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연등행렬은 오랜 역사와 함께해 온 국민들의 축제입니다. 연등회 행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등장하면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1996년도에 연등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계승되었습니다. 오늘날 대구에서는 형형색색 관등놀이라는 주제로 대구시민과 함께하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연등행렬을 관람하기 위한 외국관광객들이 30만 명을 훨씬 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연등 불빛은 불교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 세계가 함께하는 지구촌축제가 되었습니다.
싱그러운 오월 푸름은 산천을 덮고 곳곳에 각양각색의 연등이 봄바람에 따라 춤추며 우리 마음을 환하게 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리며 물질적 빈곤 속에서도 진실한 마음을 밝힌 난타의 등불처럼 여러분 각자의 마음 밭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을 켜고 자신의 마음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또한 도시를 수놓은 많은 연등불빛이 물질적인 삶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환희 비출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비록 100년을 살지라도 행실이 나쁘고 마음이 어지럽다면 마음이 고요를 지니고 덕행을 쌓으면서 하루를 사는 것만 못하다.'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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