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은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제 사위 옆에 가셔서 사위 등을 한 번 쓱쓱 쓰다듬어주세요."
주례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장모님은 쑥스러운 듯 웃으시며 다가와 제 등을 아래위로 쓰다듬어주십니다. 손길이 포근하게 등 위를 지나갑니다. 하객들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모습으로 좋아하십니다.
24년 전 제 결혼식 때의 한 장면입니다. 주례 선생님은 제 고3 때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에야 처음 찾아뵈었으니 10년 정도가 지났던 것 같습니다. 주례를 부탁하려 찾아뵐 때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혼식 날짜가 일요일이었고 시간도 오전 11시였는데 당신은 교회의 장로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승낙을 해주셨고 제 결혼을 축복해주셨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치른 후, 친구들이 너도나도 부탁을 한 바람에 그 후 몇 년간 선생님을 더 귀찮게 해드려야 했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 친구들은 명절이나 스승의 날이 되면 댁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선생님도 선생님이셨지만 사모님이 더 우리들을 반겨주셔서 늘 유쾌한 기분이 되어 댁을 나섰습니다. 술을 전혀 입에 대시지 않는 선생님이셨지만, 사모님은 포도주를 직접 담가 놓으셨다가 제자들이 찾아가면 내놓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에 선생님 앞에서 제자들이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아이들까지 데리고 인사를 다녔습니다.
사실 제가 선생님이 보시기에 흡족한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썩 뛰어나게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당신 마음에 들 만한 다른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보다는 종종 지각을 해서 아침이면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이 더 많이 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제 대학 진학 문제를 두고 몇 달간이나 함께 고민하고 도와주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처음 추천해주신 대학 전형에서 떨어지자, 다음으로 친구가 재직하는 대학에 직접 전화까지 하셔서 장학생으로 선발해줄 것을 부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른 곳으로 결정해버리긴 했지만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모님과 사별하시고 아드님댁에 들어가 사셨는데, 아마 10여 년을 혼자 지내시지 않았나 합니다. 그동안 많이 수척해지셨고 머리는 백발이 되셨지만, 제자들이 찾아가면 항상 밝은 모습으로 대해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제 어린 딸아이를 늘 무릎에다 앉혀 놓고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그 선생님이 몇 년 전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자주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5월이 되어도 이제 찾아뵐 분이 계시지 않습니다. 이맘 때면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고 소동을 벌였어야 하는데, 어딘가 마음 한편이 허전합니다. 5월이 되니 그냥 이런저런 상념이 두서없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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