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요갱/박지영 지음/ 네오픽션 펴냄
조선 초기 기녀 초요갱은 조선왕조실록에 16번이나 이름이 기록된 여인으로 재예(才藝)가 뛰어났다. 조선 기생으로 황진이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녀가 실록에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은 반면 초요갱은 역사적인 순간, 극적인 순간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만큼 잘나갔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기구한 운명이었던 셈이다. 세종 임금의 세 아들이 그녀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다가 유배를 떠나기도 했다.
초요갱은 궁중 악사 박연의 수제자였고, 궁중악의 전승자였다. 당시 기준에 따라 기녀로 구분됐으나 사실 예인에 가까웠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으로 천민 신분에서 벗어났으며, 고위 관리의 정실부인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하기도 했다.
초요갱은 세종의 아들인 평원대군을 만나 왕실과 연을 맺었고, 세종부터 문종, 단종을 거쳐 세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격동의 조선 역사에 휘말려 든다.
조선왕조실록에 초요갱은 이렇게 등장한다.
세종과 신빈 김씨 사이에서 난 아들 화의군 이영과, 세종과 소헌왕비 사이에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난 평원대군 이임은 초요갱을 두고 다퉜다. 결국 화의군 이영은 평원대군의 기첩과 간통했다는 이유로 유배를 떠나고, 초요갱은 장(杖) 80대의 중형을 받았다.
궁궐에서 쫓겨난 초요갱은 세종 말년에 좌의정을 지낸 신개의 막내아들 신자형의 눈에 든다. 결국 초요갱은 신자형의 정실부인을 밀어내고 안방을 꿰차기에 이른다.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신자형은 관직에서 쫓겨난다.
얼마 뒤에는 신자형의 7촌 조카뻘인 안계담이란 자가 초요갱을 덮치기 위해 신자형의 안방에 들이닥친다. 그러나 초요갱을 찾지 못한 안계담은 화가 나서 신자형의 노비들을 마구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처럼 초요갱 주변의 남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파멸의 길을 걷는다.
얼마 뒤 초요갱은 재예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다시 악적(樂籍)에 이름이 오르고 궁궐로 들어가게 된다. 이번에는 화의군 이영의 동생인 계양군 이증이 초요갱을 범한다. 세조 9년이었다. 세조는 이복동생인 이증을 불러 "기생이 그 여자 하나밖에 없더냐. 어째서 형제끼리 서로 간음을 하느냐"며 호통을 친다.
초요갱에 푹 빠져 살면서 허구한 날 술을 마시던 그는 나이 40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야말로 남자들에게 횡액을 가져다주는 요부였던 것이다. 그처럼 기구한 운명은 초요갱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재예가 뛰어났던 그녀는 다사다난한 운명을 견디고, 모든 은원을 정리하고 궁중악을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역사와 남자들은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면서 세조의 측근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 이때 고위 관리의 첩이었던 초요갱도 함께 축출된다. 이후 평양의 관기로 있다가 또다시 간통사건에 휘말린다. 세조의 국상(國喪) 중이었고, 초요갱과 간통한 관리는 국법에 따라 무거운 벌을 받았다. 초요갱은 조선 역사의 대표적인 팜므파탈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초요갱을 팜므파탈이 아니라 가혹한 운명에 스러져간 예인으로 바라본다. 예악과 사랑, 둘 중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었던 여인. 당당하게 사랑했으며, 치열하게 예인의 길을 걸었던 여인으로 재평가하는 것이다. 지은이 박지영은 제1회 오산문학상 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이 작품이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435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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