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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주의 야생화 이야기] 청렴과 무욕의 나무, 배롱나무

조상들은 다른 나무와 달리 껍질이 없어도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지 않고 꽉 차 있는 '배롱나무'를 '일편단심'의 상징으로 여겨 오롯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사찰, 사당, 무덤 주변 등 상징적인 공간에 심었다고 한다. 꽃말이 '부귀'로 '배롱나무'가 부귀를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원수로도 많이 심어 고택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요즘 폭염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이맘때쯤이면 플라타너스 나뭇잎은 무성하고, 매미들은 강렬하게 울어댄다.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무가 있다. 한여름 찜통더위 속에서도 태양보다 더 붉은 화사함을 연출해서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는 나무, 바로 '배롱나무'이다.

'배롱나무' 꽃은 백일 동안 붉은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해서 '백일홍'(百日紅)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꽃이 여러 번 피었다 지는 건 아니고, 실제로는 오래도록 꽃이 피어 있는 느낌을 주는 강렬한 붉은 색감이 주는 각인효과인 것이다.

원래 이름은 '백일홍'인데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사람들에게 구전되면서 '배기롱나무'로 발음되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기' 자가 빠지고 '배롱나무'가 됐다는 설이 있다. 수피(나무껍질)를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해 '간지럼나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배롱나무'는 붉은색 꽃이 7~9월에 피지만, 흰 꽃이 피는 품종인 '흰배롱나무'도 있다.

'배롱나무'는 붉은빛을 띠는 수피 때문에 '나무백일홍'(木百日紅), 또는 '자미'(紫薇)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한 붉은 배롱꽃으로 시냇물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배롱나무가 즐비하게 심어진 곳을 '자미탄'이라 부른다.

'꽃이 백일이나 핀 것은 못가에 심었기 때문이네. 봄이 지나도 이와 같으니 봄의 신이 아마 시기하리라.'(정철의 '자미탄')

조선시대 문인 송강 정철이 지은 자미탄 시에서도 배롱나무를 얘기할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는 나무이다.

'배롱나무'는 '꿀벌'에 의해서 결혼을 하고 종자를 만든다. 즉, '꿀벌'이 '중매자'인 셈이다. '배롱나무' 입장에서 보면 꿀벌 이외 다른 곤충이 자신의 몸을 타고 기어 올라와서 꿀을 빼먹는 것은 괴롭고 귀찮은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배롱나무 줄기가 매끄러운 이유는 허물을 벗듯 수피가 계속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나무 입장에서는 개미나 다른 곤충이 자신의 몸을 타고 기어 올라오지 못하도록 껍질을 매끄럽게 하는 일종의 생존을 위한 고도의 방어 전략인 셈이다.

조상들은 다른 나무와 달리 껍질이 없어도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지 않고 꽉 차 있는 '배롱나무'를 '일편단심'의 상징으로 여겨 오롯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사찰, 사당, 무덤 주변 등 상징적인 공간에 심었다고 한다. 꽃말이 '부귀'로 '배롱나무'가 부귀를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원수로도 많이 심어 고택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대부 집안에서는 '배롱나무' 꽃이 백 일을 가는 것을 보며 정진과 수행을 하였으며, 또 일 년에 한 차례씩 어김없이 껍질을 벗어버리는 배롱나무 줄기에서 청렴과 무욕을 익혔다고 한다. 사대부들의 집 안, 사찰 앞마당에 '배롱나무'가 많이 심어진 이유이다. 이렇듯 '배롱나무'는 오래전부터 고귀한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찌는 듯한 더위에 맞서 오롯이 태양을 보며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참으로 의젓한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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