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배기 빽빽한 집 주변을 진땀에 절어 헤매는 꿈을 꿀 때가 있다. 벌써 삼십 년쯤 되어 가는 일인데 낯선 지역에서 추운 밤 긴장에 싸여 헤맨 고달픔 때문인지 잠재의식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대학 1학년 때 지역 자치센터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번지가 표시되어 있는 구역도를 보았다. 거기서 번지가 정해지는 규칙을 대강 터득하고 우리나라 어디든 주소만 있으면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끔 편지가 오는 언니의 주소는 부산에 있는 수정동 1000번지였다. 편지가 올 때마다 1000을 부여받은 그 집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궁금했다.
겨울방학이 되자 그 주소를 찾아 떠났다. 언니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익산에서 강경 가는 버스를 타고 강경에 내려 대전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그리고 서대전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대전역에서 내린 후 막무가내 부산행 기차를 탔다. 부산역에 내렸을 때 겨울 해는 이미 저물어 앞이 캄캄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맵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 찾기 쉬운 일인데 주소밖에 단서가 없으니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 수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비탈진 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지레짐작한 정류장에 내렸다. 발을 디딘 곳은 하늘에 있는 무수한 별 무리 중 일부가 지상의 불빛으로 내려와 정착한 듯한 동네였다. 근처 가게에 있는 주인에게 서 있는 곳의 번지를 물어 1000번지가 되는 곳의 좌표를 찾아 내려갔다. 이따금 다닥다닥 붙은 문패를 살펴보며 내리막길을 불안하게 걸었다.
마침내 좁은 골목에서 그 집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설움에 북받쳐 목이 메었다. 밤이 이슥한 시각 추위 속에서 두려움에 한참을 오그렸던 발은 무감각했다. 언니는 과감하고 엉뚱한 나를 웃으며 맞아 주었다. 언니가 사는 집주인 할머니는 혈육 없이 홀로 늙은 분이라 그런지 아주 까칠했다. 마당에 머리카락 한 오라기라도 떨어져 있으면 지저분하다고 혀를 끌끌 차는 분이라 마당을 지날 때면 긴 머리를 감싸 쥐고 다닐 지경이었다. 하지만 견디다 못해 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지 못하면서 세는 왜 놓는지 모르겠다고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 날 할머니는 뜬금없이 웃는 얼굴로 찾아와 자기 방으로 와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우리나라에 일가친척이 없고 한글도 모른 체 사는데 연변에 사는 친척에게 자기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부탁한 것을 토대로 따뜻한 안부를 보태어 편지를 쓰고 읽어 준 일이 있은 후 할머니는 나를 유별나게 깍듯이 대해 주었다. 1000번지를 까맣게 잊고 살다가 언니랑 같이 살았던 동생에게 들으니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전 재산을 자치센터에 기부했다는 말을 했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늘 인색하고 화초를 돌볼 때만 숨겨둔 향낭에서 미소를 풀어놓은 듯 딴사람이던 할머니가 기부로 삶을 정리했다는 소식은 특별하면서도 조금은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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