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월 일본은 난공불락의 뤼순 요새를 함락하고, 그해 5월에는 러시아의 발트함대마저 대한해협에서 격파했다. 러일전쟁은 일본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9월 5일 포츠머스조약 체결에 맞춰 열린 일본의 국민대회는 폭동으로 번져 관공서와 신문사가 습격당했다. 일본은 애초 12억엔의 배상금을 요구했으나 단 1엔도 받지 못했고, 점령했던 사할린의 북쪽 절반도 내주어야 했다. 승전국 일본이 차지한 것은 조선에서의 배타적 우월권과 요동반도 조차권, 사할린 섬 남부가 전부였다. 일본 국민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협상의 러시아 측 전권대사는 세르게이 비테였다. 일본 전권대사 고무라 주타로와 달리, 비테는 미국 언론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 결과 미국 언론과 국민들은 러시아에 우호적이 되었다.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힘을 소진한 일본은 미국의 중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테는 러시아 교통부 장관, 재무부 장관, 총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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