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으로 마음 치유한 할머니들 자신감 되찾아

예천 지보면 이성은 신풍미술관장

"그림으로 할머니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요."

예천군 지보면 '신풍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는 서양화가 이성은(53'사진) 씨는 지난 2009년 부산에서 예천으로 귀농했다. 올해로 8년째 운영 중인 미술관에서 이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고 있다. 학생들은 평생 붓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할머니 34명. 평균 나이 75세로 모두 마을 인근 안동'예천 주민들이다.

중학교 미술교사 생활을 하며 남편과 함께 부산에 살던 이 씨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원래 이곳 신풍리에 홀로 사시던 시어머니를 부산으로 모시면서부터다. 시골에서 평생 살아온 시어머니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 관장은 "귀농 후, 어머니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그림을 가르쳐 보자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열게 됐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개관 첫해만 해도 외지인을 바라보는 반응이 냉랭했다. 하지만 간식을 제공하면서 그림을 가르쳐 준다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과자 먹으려고 모였다가 무심코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할머니들은 크레용 칠에 재미를 붙였다. 날이 갈수록 제법 그림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단순한 선(線) 위주의 그림에서 풀, 사람, 자연의 모습들이 하나 둘 담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들은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어느새 그림이 말을 했고, 그 안에는 그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겼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판매도 된다. 판매액은 전액 할머니들의 용돈으로 전해진다.

이 관장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삶을 '밥버러지 같은 인생'이라고 표현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며 "이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자식들에게 당당한 할머니를 볼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2014년부터는 인근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집으로'라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중학생 20여 명 한 팀이 가상의 가족이 돼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집을 설계하고 나무로 집을 짓는 수업인데 학생들에게 인기다. 지난해에는 사립미술관협회로부터 '2015우수에듀케이션' 상을 받기도 했다. 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헬로민화'와 농촌 여성을 위한 '우리는 예천댁', 할머니 그림학교 '휴휴실버 페스티벌', 장애인을 위한 '나비의 꿈' 등 다양한 미술 프로그램과 기획전시회 등도 열고 있다.

이 관장은 미술관 주변으로 관람객들이 하룻밤 묵을 수 있는 3채의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있다. 이 관장은 "할머니들의 그림에는 순수하고 꾸밈없는 표현으로 그림마다 재미와 감동, 삶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앞으로 할머니들을 위한 전국 최초의 할머니 그림학교를 설립하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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