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혜영의 근대문학] 박태원의 '우맹'(愚氓)과 '백백교'(白白敎) 사건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1937년 4월 13일자 조선일보
1937년 4월 13일자 조선일보 '호외'에 실린 백백교 관련 기사

1937년 4월 13일, 한 장의 신문 호외가 조선사회를 발칵 뒤집어놓는다. 동학의 한 분파였던 백백교가 은밀하게 교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314명이나 되는 신도를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사실이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이 엽기적 살해 행각은 교주 전용해의 지시로 교단 간부가 직접 자행한 것이었다. 한 핵심간부는 총 48회에 걸쳐 169명이나 되는 신도를 살해한 것으로 조사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은 5년 동안의 조사와 재판을 거쳐 1942년 관련자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되면서 완결되었다. 수사망을 피해서 도망쳤던 교주 전용해는 관련자 조사가 진행되던 1937년 4월, 산 속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백백교는 모든 사이비 종교가 그런 것처럼 경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교리도 허술했다. 종말의 날이 오면 물과 불의 심판이 내려져서 인류가 전멸하고, 바로 그 순간 동해에 영산이 떠올라 백백교를 믿는 사람만이 그곳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재산을 교주에게 봉헌하고, 몸과 마음도 교주에게 의탁해야했다. 교주가 하사한 첩지를 구매해서 몸에 항상 지니고 '弓弓乙乙'로 시작되는 밑도 끝도 없는 주문을 계속 외우는 것 역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중요했다.

백백교가 일으킨 이 전대미문의 범죄사건은 조선 사회뿐 아니라 일본제국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야만적인 조선을 근대화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조선을 무력으로 지배해온 일본제국이었다. 그런 일본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백백교 사건은 일본이 내건 조선지배 명분이 무효가 될 정도로 치욕스러운 사건이었다. 박태원의 '우맹'(愚氓)(1938)은 조선 사회를 경악시킨 백백교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소설에서 박태원은 백백교 교주 전용해를 잔혹한 살인마의 면모와 한 아들의 자애로운 아버지의 면모를 동시에 지닌 인물로 설정하여, 인간의 이중성과 이율배반적 내면의 문제를 탐색해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이비 종교의 야만성과 폭력성이 1937년의 조선 사회에서 어떻게 그처럼 열광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가에 대한 해답을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찾아가고 있다. 그 답을 박태원은 '우맹'(愚氓), 즉 '어리석은 민중'이라는 제목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무지몽매한 조선의 전근대적 현실이 백백교와 같은 사이비 종교의 성장에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숙주가 되었다고 본 것이다. 개인의 영생을 얻기 위해 가족도 희생시키는 소설 속 인물들의 자기중심성에서 나타나듯, 그 무지몽매함에는 공공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욕심을 먼저 채우려는 유아기적 심적 태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2011년 10월 모 언론에 '백백교 교주 머리 표본 화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포르말린 액에 담군 백백교 교주 전용해의 머리 표본은 일제강점기 일본 당국이 만든 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되어 왔다. 이를 한 불교단체가 비인도적이라는 진정을 내어 80년 만에 화장한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은 이 '인체표본 화장'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야만적인 1930년대와 비교할 때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새삼 깨달으며 뿌듯함과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와 구원파 사건, 최근 대두되고 있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를 볼 때, 지금 우리 사회가 80년 전 식민지 조선 사회와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우리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조국을 향해 반박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정경심 기소에 대해 논의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
LG에너지솔루션의 포드와의 대형 전기차 배터리 계약 해지가 이차전지 업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주요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
방송인 유재석은 조세호가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하차한 사실을 알리며 아쉬움을 표했으며, 조세호는 조직폭력배와의 친분 의혹으로 두 프로그램...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