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내 기억 속의 권혁주

이성욱
이성욱

'가장 아름다웠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예술가가 세상과의 연을 다했습니다'라는 어느 유명 작곡가의 페이스북 글을 접했다. 이 글에 있는 보도기사 링크를 클릭한 순간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지난 10월 12일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연주차 방문했던 부산이 그의 마지막 여정이 되어버렸다. 급성심정지가 원인이었다.

2009년 5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된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 초청 연주회'에서 공연담당자 자격으로 그와 처음 마주하였다.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는 당시 유망주였던 손열음, 성민제, 김선욱 등 현재 최고의 클래식 스타들이 소속되었던 앙상블이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과묵하고 말이 없었던 그였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현란했다. 펜데레츠키와 브람스의 곡에서 보여준 화려한 보잉 스킬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그의 격정적인 사운드는 앙상블의 조화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유달리 돋보였다.

2015년 11월, 웃는얼굴아트센터 앙상블 오푸스 공연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직접 운전해서 대구로 내려온 그에게 "직접 운전하고 먼 거리를 오셔서 많이 피곤하시겠어요?"라고 물어봤다. 그는 수줍은 미소를 띠며 "늘 그렇게 다닙니다. 혼자 생각할 것도 많고요"라고 답했다. 바쁜 일정에 장거리 운전까지 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객석에서 눈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공연은 늘 그렇듯 열정적이었으며 뜨거웠다. 슈만의 피아노 콰르텟 작품 47번을 마지막으로 오푸스의 공연은 끝이 났다. 8번의 커튼콜을 받으며 말이다.

그는 매순간 최고임을 증명해야 했다. "모스크바에서 10년간 살면서 항상 우승자로 버텨왔다. 그리고 그 높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연주회 때마다 그가 느낀 심리적 압박감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주변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본인의 건강을 돌볼 여유도 없이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갔다고 한다. 더불어 살인적인 연주 스케줄과 먼 거리의 자가운전은 그의 몸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 같다.

"음악을 사랑한다." 그가 한 매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랬기에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였으며 모든 공연마다 최고의 연주를 들려줬다.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자만하지 않았다. 다 닳아 손톱이 남아 있지 않은 그의 손 사진은 오직 음악만을 위해 살았던 각골지통(刻骨之痛)을 보여준다. 음악을 대함에 있어 누구보다 겸손했으며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권혁주. 그의 빈자리가 더욱 애석하고 원통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만약 지금 그가 옆에 있다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기보다 음악 앞에 진실했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길 원하지 않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