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칼자루 쥔 야당

'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뒤흔든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야권은 앞다퉈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했다가 여권이 받아들이자,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돌아섰다. 그리고는 김병준 총리 내정을 철회하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임명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청와대가 국회 합의로 총리를 추천하면 임명하겠다고 물러섰다. 그러자 야당은 '일말의 고려 가치도 없다'며 책임과 권한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청와대가 국무위원 제청권, 해임 건의권, 국정 통할권도 보장하겠다고 하자, 이제는 '대통령 즉각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저께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청와대가 수용하자, 당내 반발로 한나절 만에 철회했다. 국민과 국가를 생각한다면 이런 행태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권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권한인 '탄핵카드'는 들지 않고, '대통령 스스로 퇴진할 것'을 요구하고, 국회 밖의 야권 대선주자들은 국회를 압박함으로써 은근히 야권 내 차기 대권 경쟁자들의 혼선과 무능을 강조한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대통령 탈당과 거국중립내각 총리 선출'을 요구한다. 야 3당 모두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지만 셈법은 저마다 다르다.

박근혜 정권 퇴출을 바란다면 '탄핵'을 추진하면 된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탄핵'은 추진하지 않고 정국을 흔들기만 하는 이유는 대체 뭔가? 역풍 맞을까 봐? 그 모양이니 국민과 나라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이익만 생각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서로 셈법이 다르다고 해서 정국을 수습할 생각은 않고 흔들기만 하는 자들을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재 박근혜정부는 '식물정부'다. 통치에 필요한 도덕적 정당성도, 정책 집행에 필요한 동력도 없다. 환자로 치면 의식불명 상태다. 지금 정치권은 의식 없는 환자를 상대로 '이래라, 저래라' 고함을 지르는 형국이다. 칼자루는 대통령이 아니라, 야당이 쥐고 있다. 야당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환자의 호흡기를 떼고 다음 절차를 밟든지, 요양시설로 보내고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가든지 결단해야 한다. 자신들의 법적 권리인 '탄핵'은 회피하며 '하야'나 외치는 무책임과 무능은 국민과 나라에 해롭다. 제 할 일이 태산인, 아직 세상사를 모르는 중'고생들까지 부추겨 이게 무슨 짓인가.

한국이 그렇게 한가한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동북아 정세 변화 예고, 경제 위기, 북한 핵위기 등 난제가 쌓였다. 서둘러 정국을 수습하고, 나아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자기들 잇속 따지느라 정신이 없다.

대통령 하야는 60일 내 대통령 선거라는 부담으로 이어진다. 정국 대혼란은 물론이고, 인물 검증도 못한 상태에서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민주당은 그러고 싶겠지만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다소라도 여유를 갖고 정국을 이끄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책임총리와 거국중립내각'에 여야가 합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 탄핵이다. 탄핵에는 적어도 6개월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은 생각하고, 살펴서 차기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고, 향후 정국을 예상할 수 있다.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자면 여야가 '총리'에 합의해야 한다. 여야가 합의로 총리를 추천할 수 있을까? 여당은 빠지고 야당끼리라도 총리 적임자를 합의 추천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국회가 차기 총리를 합의 도출할 수 있다면 그 인물이 좋다. 합의할 수 없다면, 대통령은 탈당하고 야권은 김병준 총리를 인준해야 한다. 그것이 정국을 수습하는 길이고,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길이다. 지금은 '국가 위기 수습 방안'을 고민할 때이지 '득실'을 따질 때가 아니다.

대통령 하야보다는 탄핵이 낫고, 탄핵보다는 거국중립내각'책임총리가 낫다. 온 나라가 펄펄 끓는 기름이다. 대통령 하야는 기름에 불을 던지는 행위다. 길을 두고, 굳이 가파른 언덕으로 마차를 몰아갈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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