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몰라도 너무 모른다

"촛불 시위에 강남 아줌마들도 나온다면서? 답답한 게 없는 분들이 왜 그랬지? 평생 안 해본 일 체험 삼아 나온 건가." "상위 1%의 자존심이 무너진 거죠. 말 사 줄 돈은 있지만 그렇게 선발 과정을 확 잡아 고쳐서 대학에 쑥 들어가진 못하잖아요. 누군 밤마다 주차 전쟁 해가며 아이들 학원에서 데려오는데 가만히 앉아서 특혜를 누리니까 분노가 치민 거죠."

"그래. 지난번 청소년 시국선언 때 보니까 한 대구 학생이 자기도 배후 세력이 있어서 나왔대. 바로 자기 엄마라고, 하루 열두 시간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아픈 엄마가 가만있으라고 하는 악당들에게 맞서게 한 배후 세력이라고. 왜 이렇게 분노하는지 그들은 알까?"

"분노가 우울과 겹쳐서 더 힘든 거 같아요. 술 먹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삼각 김밥으로 때우며 알바하랴 공부하랴 정신없이 살아가던 한 여대생이 넋을 놓고 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며,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며 술잔 기울이며 참담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영세 기업 하는 분하고 만났는데 권력이 저렇게 대기업에 법인세를 걷지 않고 몰래 기부금을 받으니까 자기들이 너무 힘들다고, 툭하면 세무조사 나와서 벌금 매긴다고, 세금은 거둬야 하니까 서민들만 쥐어짜는 거야." "도대체 이렇게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한없이 절망하게 만드는 자들이 누구죠? 한두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국가와 시장이 결탁하여 실컷 말아 먹은 지는 오래되었잖아. 명박산성으로도 끄떡없었고 어떤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시간이 지나가면 잊히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거야. 그들은 우리들을 발가락 때만도 여기지 않으니까 왜 이렇게 시민들이 분노하는지, 우울해하고 좌절하는지 절대로 모를 거야. 오히려 과민 반응하는 거 아니냐고 억울해할걸. 4대 강보다 훨씬 적게 해 먹었는데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고통이 분노가 되고 저항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새로운 시민사회를 만드는 기회가 되었으면, 야당도 하는 거 보니까 못 믿겠고 시민들이 주도하는 데 따라 정치지형도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참에 한두 사람 물러나는 게 답이 아니라 신시민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니들이 그렇게 마음먹으면 될 거야. 꼭 되어야 하고. 근데 분노와 우울, 절망의 상처를 특히 심하게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꺼지지 않는 촛불을 보면서 스스로 치유할 거라 봐요. 분노의 촛불이 활활 타오르는 정의의 횃불이 되고 평화의 들불이 되면 용기를 얻을 거예요." "그렇게 얘기하니까 민주화 운동하던 청년이 되살아나는 거 같아. 어째 좀 젊어진 거 같지 않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