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은 1990년 '평신도의 날'을 맞아 '내 탓이오' 운동을 시작했다. 일종의 도덕재무장 운동으로 처음에는 교계 내부의 운동이었으나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과 대립이 극심했던 당시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전국적인 호응을 불렀다.
'내 탓이오'는 '고백 기도'의 한 구절이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라는 고백과 함께 손으로 가슴을 세 번 치면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옵니다"라고 참회하는 것에서 따온 것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는 예수의 말씀대로, '남 탓'만 하는 사회 풍조를 나부터 반성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취지였다.
하지만 모든 사회 부조리를 내 탓이라고 여기는 것은 문제의 근원에 눈을 감게 함으로써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더디게 하는 것은 물론 쓸데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일종의 '마조히즘'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부정적 반응도 없지 않았다.
1945년 무조건 항복 직후 일본 총리 히가시쿠니노미야(東久邇宮)가 주창한 '1억 총 참회론'이 그 생생한 실례다. 이는 전쟁의 책임을 '덴노'(天皇)를 비롯한 일부 지도자에게 돌리지 말고 일본인 전체가 그 책임을 나눠지고 반성하자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참회'하는 일본 국민이 줄을 이뤘다. 분개할 수밖에 없는 간교한 책임 분산이었다. 저명한 문명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도덕적 세리머니"에 불과했다. 우리는 더 분개할 수밖에 없다. '1억'에는 우리 민족도 포함된다. 일본의 전쟁 범죄를 우리가 왜 참회해야 하나?
하지만 '내 탓이오' 운동은 그런 것이 아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지 스스로를 죄인 취급하라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그런 점에서 '내 탓이오' 운동은 시간을 초월한 생명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구속된 최순실이 전국적인 촛불집회 소식을 접하고 "내가 뭐라도 된다고…내가 죽일 X"이라고 자책했다고 한다. 이는 박 대통령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국민을 향한 것일까? 전자라면 아직 정신 못 차린 것이고 후자라면 그나마 정신 차린 것이 되겠다. 정신을 차렸다면 감옥에 가서도 그렇게 하길 빈다. "내가 죽일 X"이라며 끊임없이 가슴을 치라. 그것이 국민에게 사죄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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