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성난 돼지감자

원구식(1955~ )

나는 걸신들린 여우처럼 산비탈에서 야생의 돼지감자를 캐먹는다. 먹으면 혀가 아리고, 열이 나고, 몸이 가려운 돼지감자. 독을 품은 돼지감자.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든, 야생의 돼지감자처럼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삶의 줄기에 독을 품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세상을 향해 외친다. 나 돼지감자야. 어디 한번 씹어봐. 먹어. 먹으라니까. 그러나 나는 가짜 돼지감자. 독도 없으면서 있는 체 하는 가짜 돼지감자. 우리는 모두 가짜 돼지감자.

(중략)

인간의 성질 속엔 이율배반이 존재한다. 스스로를 속여야만 살수 있는 그 감각은 대단히 강렬한 것이어서 인간은 사랑 속에서까지 그것을 발견하고 만다. 아무도 자기가 누구인지, 누군지 이해할 수도 정의할수도 없다. 삶은 불가사의한 것이서 어디든 개입한다. 강렬하고 음침하고 불쾌하며 갈구하지만 닿을 수 없고 비참하고 저열하며 빠르지만 멈출 수 없고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며 근원적이지만 스스로 파멸해 가는 욕망을 위해서 인간은 돼지감자를 먹는다. 모여서 돼지감자를 논하고 돼지감자를 먹고 몸이 가렵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 가짜 거위처럼 뒤뚱거린다. 나는 모순된 사람에게서 매혹을 느낀다. 그 속에는 힘이 있고 매력이 있다. 돼지감자를 으깨어 먹다보면 기적, 신비, 권위가 사라진다. 돼지감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돼지나 짐승들이 잘 먹는다. 게다가 프랑스어로는 '폼드테르'라 하여 '땅의 사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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