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창조와 모방

모든 예술 장르에서 때때로 볼 수 있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표절 논란이다.

수개월 전 문학계를 뜨겁게 달군 작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본 군국주의를 선봉에 서서 외치던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일부를 거의 그대로 베낀 부분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가히 역대급이었다.

성경 말씀처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으랴'라고 외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누가 봐도 표절인 것을 우기는 모습은 무용계와 패션계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의 일이다. 꽤 신선한 연출로 찬사를 받은 어떤 무용 작품에 대해 한 후배가 몇 년 전 유럽에서 본 어떤 공연과 너무 닮았다고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나는 그 작품을 보지는 않았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경우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어디까지 표절로 봐야 하는 걸까? 참 헷갈리는 대목이다.

특히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자기는 표절 원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을 보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며 완강히 표절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솔직히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그렇다면 나는 표절에서 자유로운지 반문해 볼 때 찝찝한 것도 부인 못 할 일이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콱 막히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내가 취하는 태도가 몇 가지 있다. 모든 생각을 비우고 멍을 때리거나 술을 마시고 대책 없이 수다를 떨거나, 그래도 안 되면 디자인 관련 잡지를 뒤적이거나 쇼핑을 하며, 새로 선보인 옷들을 살핀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내가 해야 할 디자인을 가능하면 잊으려 한다. 다른 일을 하면서 내 머리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고 할까. 그런데 그러고 나서 다시 작업에 들어갈 때, 나는 무의식적(?)인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솔직히 나 역시 자신은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예술계도 학계의 논문에서 활용하는 각주라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부분은 어떤 작품에서 차용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얼굴 두꺼운 사람이 이기는 풍토는 없어지고 스스로도 떳떳하지 않을까를 날마다 생각한다.

또한 표절을 하는 것과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예술인들 스스로 깨달을 필요가 있다. 단어 하나 다르지 않게 다른 작품의 대사를 베껴 쓰거나, 기존 디자인에 색상만 바꿔 제작한 의상을 무대에 올려놓고도 표절하지 않았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것은 범죄라는 것쯤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미 우리는 기준선을 잘 알고 있다. 어디까지가 표절인지를. 물론 표절은 개인의 양심이 많이 좌우하는 행위인 것도 사실이다. 결국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늘 사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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